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과 마리 앙투아네트 신화주명철 지음
책세상 발행·1만8,000원
'오스트리아 계집' '오스트리아 암캐' '적자부인(赤字夫人)'….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에게는 이처럼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어 있다. 음란하고 낭비가 심해 나라를 망쳤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결국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과 마리 앙투아네트 신화'는 부정 일변도인 '앙투아네트 신화'의 진실을 파헤치는 책이다. 주명철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내놓은 문화사 저술로,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을 통해 혁명 전후 프랑스 사회와, 당시의 여론 형성 과정을 살피고 있다.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은 앙투아네트를 팔아먹은 사기극이었다. 1785년 라 모트 백작 부인은 추기경 로앙을 속여 2,800캐럿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가로챈다. 라 모트 백작 부인은 신앙생활은 뒷전인 채 왕비의 환심을 사 총리가 되려는 로앙의 욕망을 간파, 그에게 앙투아네트를 대신해 목걸이를 사달라고 요청한다. "왕비가 왕 몰래 목걸이를 사고 싶어하니 비밀에 부쳐달라"는 거짓 입막음을 했다.
추기경은 그 말을 곧이 듣고 160만 리브르 짜리 목걸이를 왕비 대신 구입키로 한다. 로앙이 보석상으로부터 목걸이를 넘겨 받자 백작 부인이 왕비에게 전하겠다며 가져간다. 백작 부인 일당은 목걸이를 해체해 팔아 큰 돈을 번다. 사건의 전모는 보석상이 왕비에게 대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드러난다. 약속한 지급일이 지났는데도 돈을 받지 못하자 보석상이 왕비를 찾아가 그간의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왕비는 크게 분노했고 추기경을 파리고등법원에 고소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것은 앙투아네트였다. 목걸이 사건이 법정에 오르면서, 사람들은 소문으로 떠돌던 앙투아네트의 사치를 사실로 받아들인 것이다. 로앙에게 무죄가 선고되면서 왕비는 더욱 곤경에 처한다. 재판이 1년을 끌면서 소문은 증폭됐다. 앙투아네트는 이 사건과 관계가 없었는데도, 국민은 그가 사건을 주도했다고 생각했다.
주 교수는 이것이 당시의 여론이요 신화라고 말한다. 왕비에 대한 소문과 험담, 악담은 소책자, 풍자시 등 인쇄물로 만들어져 전파됐다. 법조인들은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진실을 제 마음대로 구성한 사건 개요서를 냈다.
여론을 이끈 당시의 인쇄물은 이 책 2부에 수록돼 있다. 저자가 프랑스 국립도서관 금서보관실에서 찾은 것들인데 대부분 앙투아네트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양성애자라거나 근친상간과 간통을 일삼는다거나, 심지어 오스트리아 출신인 앙투아네트가 프랑스를 망치기 위해 시집왔다는 말까지 있다. 앙투아네트가 옷을 사는데, 도박을 하느라 돈을 많이 쓴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욕을 들을 정도로 사치스럽고 음란한 여자는 아니었다. 거친 언어로 묘사된 이들 문서는 당시 여론이 어땠는지, 반대로 이 글들이 여론을 어떻게 이끌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이러한 비방문은 앙투아네트 신화를 사실로 여기게 했고 결국 '나라를 말아먹은 죄'로 그가 처형되는 데 일조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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