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꽃 머리에 꽂고문정희 지음
민음사 발행·6,000원
최근 정지용문학상과 레바논의 나지나만문학상을 수상한 문정희(57·사진) 시인의 신작 시집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가 출간됐다. 작가의 말에서 그녀는 "시는 몸이며, 몸의 길이며, 생명"이라고 밝히면서 "존재의 시원인 몸, 비로소 언어로 귀환했다"고 털어놓았다. 10여 권의 시집을 펴낸 시인이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음을 알리는 말이다.
새 시집의 시들은 생기와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시에서는 상처와 고통도 에너지로 바뀐다. '문득 이 도시의 모든 평화가 위조 같다'면서도, '어떤 사랑으로 한번/ 장렬하게 추락할 수 있을까/ 맹목의 힘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볼까'라고 힘있게 노래하고('사랑 신고'), '뜨거운 술에 붉은 독약 타서 마시고/ 천 길 절벽 뛰어내리는 사랑'에 대해 '가장 눈부신 소멸의 다른 이름'이라고 강렬하게 말한다('동백').
문씨가 모든 언어에서 발견한 것은, 그것이 시의 근원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에서는 처연한 슬픔의 시어조차도 의미를 찾아냈다는 기쁨으로 인해 들떠 있다. '오래 사랑하던 말, 가뭇없이 꺼져가는/ 이게 끝이란 말야? 역순이어야 해/ 처음에 늙은 짐승으로 태어나/ 맑고 눈부신 성인으로 커서/ 사랑스러운 아기로 끝나고 싶어'('그의 마지막 침대'에서)
언어에 눈뜬 시인은 당당하게 '나의 신은 나'라고 말한다. 문씨는 자신이 보는 것과 그것을 가리키는 단어 하나 하나를 시로 옮기는 일이 산을 옮기는 일만큼 힘이 든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힘들게 쓰여진 시를 세상에 내보냈기에 시인은 '내가 가진 모든 언어로 내가 나의 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사람의 가을'에서).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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