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 9명이 2개월여 동안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심리를 진행하면서 기각·각하·인용 등 주문(主文)에 대한 각자의 속내를 털어놓은 것은 이 달 들어서 였던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3월30일 첫 공개변론 시작 이후 한달 동안 총 7차례 변론이 진행됐지만 재판관들은 각자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이는 재판관들이 대통령 측근 증인신문 등 재판이 본궤도에 오른 뒤에도 사건을 관망하며 절차문제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는 뜻이다.그러나 재판 절차에 대한 의견 취합조차 쉽지는 않았다. 탄핵심판이 전례가 없는 '법리적 불모지'였던 탓에 절차 문제에 대한 유권해석에도 본안 심리 만큼의 의견 수렴이 필요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재판 중이거나 수사 중인 사건의 재판·수사 기록은 송부를 요청할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법 조항 해석 부분. 논란 끝에 재판관들은 '원본기록이 아닌 복사본은 송부할 수 있다'고 해석, 법원과 검찰에 기록을 요청했지만 편법적 법해석이라는 논란을 일으켰다.
소추 당사자인 노 대통령의 출석이 의무사항인지 아닌지, 소추위원인 김기춘 국회법제사법위원장이 선거운동을 이유로 공개변론 불출석을 선언했을 때 과연 대리인단만으로 탄핵재판을 진행할 수 있는 지 등도 논란거리였다. 헌재는 이 같은 절차적 문제들에 대한 결론만을 심판정에서 이야기했을 뿐, 그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 과정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은 항상 "다 검토해서, 그렇게 결론 내렸다"고 미소를 짓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검찰 수사기록 제출 거부를 둘러싸고, 재판관 9명이 공개변론 도중 1시간 가까이 심판정을 비운 채 논의를 하는 모습에서 재판관 사이의 의견차가 감지되기도 했다.
이 달 들어 재판관들이 주문을 놓고 격론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재판관들은 고뇌하는 표정이 역력히 드러났다. 온종일 평의를 가진 뒤 상기된 표정으로 퇴근하는가 하면, 심지어 주심인 주선회 재판관은 "정말 힘든 상태"라는 말로 결정문 작성 및 소수의견 개진 여부 등에 대한 고뇌를 드러내기도 했다.
재판관들이 최종 완성된 결정문을 받아본 것은 선고 10시간 전인 14일 0시께. 13일 밤 11시 15분까지 야근을 하며 결정문 문구를 다듬은 주 재판관은 헌재 직원들을 동원, 심야에 각 재판관에게 결정문을 배달했고, 재판관들은 최종 결정문을 밤 늦게까지 숙독한 뒤 14일 아침 출근해 재판이 열리기 직전에야 결정문에 사인을 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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