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소추 파동이 1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으로 63일만에 일단락됐다. 16대 국회에서 원내 제1당과 2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주도로 이뤄진 탄핵 파동은 국정 운영의 공백과 혼선을 초래했다. 그러나 민의를 거역한 다수 야당의 횡포에 국민이 17대 총선에서 심판을 내림으로써 우리 정치 지형이 한 순간에 뒤바뀌는 등 민주주의와 정치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는 게 사실이다.특히 국민이 교과서에나 나오는 '대통령 탄핵'을 현실에서 직접 체험하는 등 산 교육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탄핵 파동이 남긴 것 중 하나는 의회 중심의 '대의 민주주의' 에 대한 견제 장치로 국민이 나서는 '직접 민주주의'가 발현된 점이다. 여소야대 구도에서 다수당이 다수결 원칙을 내세워 여론을 무시할 경우 국민이 직접 대의 정치를 바로 잡을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탄핵안 가결 초기 탄핵에 반대하는 많은 시민이 전국적인 대규모 촛불시위에 참가한 것 등이 단적인 예이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국민이 촛불 시위를 통해 국회 다수의 정치 세력을 견제하고 그들의 기도를 좌절 시켰다"며 "하지만 과거 4·19나 6월 항쟁과 달리 평화적인 분위기로 집회를 진행, 성숙된 시민의식을 보여줌으로써 민주주의 성장의 디딤돌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17대 총선을 통해 소수당이었던 열린 우리당이 원내 1당으로 자리잡고, 민노당이 의회에 진출하는 등 탄핵 후 폭풍은 정치권 판갈이에도 결정적 변수로 작용했다. '의회 독재'에 대한 '신 피플 파워'의 위력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탄핵 반대 여론이 60% 이상인 상황에서 다수당이 수의 힘만 믿고 탄핵을 몰아붙인 것 아니냐"며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혀 독단적 판단을 내린 '대표 정치'의 실수를 국민들이 바로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탄핵 파동으로 4·15 총선이 지역 일꾼을 뽑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채 '탄핵 레퍼렌덤'으로 전락한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탄핵 파동은 향후 대통령의 일방적 국정 운영 방식과 권한 행사를 제어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특히 대통령이 다수 국민이 아닌, 특정 지지 세력만 껴안는 기존의 '코드 정치'에 대해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장영수 교수는 "대통령은 전체 국민의 대통령이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만의 대통령이 아니다"며 "대통령이 아직까지는 포용과 화합에 미흡한 만큼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탄핵 파동은 또 각 당의 정파적 이해 관계와 맞물려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심화 시켜 국가 경쟁력이 악화되는 부작용을 낳은 게 사실이다. 경실련 고계현 정책실장은 "정치와 사회 모두에서 정쟁이 아닌 토론하고 양보하는 문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탄핵 과정을 통해 입법 부실 문제도 드러났다. 고려대 임혁백 교수는 "현 헌법은 극단적인 여소야대 구도일 경우 대통령의 사소한 범죄도 탄핵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며 "향후 개헌 논의 과정에서 국회의 탄핵 소추 의결 조항을 꼼꼼히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을 내리는 현 제도 역시 헌재에게 부담을 주고 국민의 반발을 살 수 있다는 점에서 다소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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