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하면서 결정문의 상당 부분을 노 대통령에 대한 '경고'로 채웠다. 헌재는 탄핵 사유중 측근비리 관련 및 경제파탄 책임 부분은 "판단 대상이 아니다"거나 "탄핵사유가 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헌재는 그러나 선거법 위반을 인정한 뒤 한걸음 더 나아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법 위반 결정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고 한 노 대통령의 발언과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 발언을 "법치국가 정신에 반하는 것" "헌법 수호 의무 위반"이라고 규정했다. 헌재는 다만 이 같은 위법·위헌 행위가 헌법질서를 해칠 만큼 '중대한' 법 위반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선거법상 공무원 중립의무 위반
헌재는 대통령도 선거법상 정치적 중립의무가 있는 '공무원'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따라서 지난 2월18일과 24일 2차례 기자회견에서 행한 노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은 총선이 임박한 시점 등을 감안할 때 '공무원의 중립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헌재는 밝혔다.
헌재는 이 같은 발언을 한 기자회견도 대통령 직무의 일환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발언에 특정 후보의 당선이나 낙선을 의도한 '목적성'은 없기 때문에 '공무원의 선거운동 금지' 조항에는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여의도 '리멤버1219' 행사장에서 발언 등은 '정치적 의견 표명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비록 '의견 표명의 자유'가 사인(私人)으로서의 기본권 행사에 속한다 해도 대통령의 절대적인 지명도를 감안할 때 국가원수 및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때는 정치적 의견 표명을 삼가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투표 제안 및 선거법 폄하 발언 헌법 위반
헌재는 노 대통령이 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며 선거법을 '관권선거시대의 유물'로 폄하한 것에 대해 "법치국가의 정신에 반하는 것으로, 대통령으로서 헌법 수호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특히 노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에 대해서는 강한 어조로 위헌성을 지적했다. 헌재는 "국민투표제도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남용해서는 안된다는 헌법적 의무를 위반했으며, 대통령에게 부여된 국민투표 부의권을 위헌적으로 행사했다"고 판시했다. 실제 재신임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행동은 없었지만, 제안 자체만으로도 위헌이라는 것이다.
측근비리, 경제파탄 책임 불인정
헌재는 대통령의 직무관련성이 시작되는 시점을 '취임 이후'로 규정했다. 썬앤문, 대선 후보 캠프의 불법자금 수수 등 후보 및 당선자 시절 행위는 판단대상에서 배제됐다. 취임후 최도술씨 비리 등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경제파탄 역시 정책결정상의 잘못이나 직책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헌재는 탄핵소추안 의결의 절차적 하자 주장과 관련, 국회법에 명시적 규정이 없고 소추사유에 대한 사전조사를 하지 않은 것 등은 국회자율권에 속하는 문제여서 위법이 아니라고 해석했다.
또 탄핵소추 의결은 대통령의 개인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으로서의 대통령의 권한행사를 정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은 국가공권력으로부터 불리한 결정을 받기 앞서 자신의 견해를 진술할 기회가 부여된다'는 헌법상 '적법절차의 원칙'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헌재는 판단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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