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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美동부 매미떼 17년만에 대공습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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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美동부 매미떼 17년만에 대공습 예고

입력
2004.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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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등 미 동부지역 일대 주민들은 올해 조용하고 목가적인 초여름의 낭만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매미 떼 출현이 예고돼 있기 때문이다. 17년 전 매미의 울음 소리에 귀청이 멍멍해지고 야외 결혼식을 망치고 매미의 껍질을 밟지 않고 길을 걸을 수 없었던 경험을 간직한 그들에겐 매미 떼의 부활은 그 자체로 악몽이자 고통이다.

긴 기다림, 짧은 삶

올해 극성을 부릴 것으로 예상되는 매미(Cicada)는'브러드(Brood) X'종이다. 변태주기가 2∼5년, 13년인 보통 매미와는 달리 브러드 X는 17년마다 워싱턴 DC와 인디애나주, 뉴저지주에서 조지아주까지 미 동남부 15개 주에서 대규모로 나타난다. 애벌레로 17년을 땅 속에서 지내다 짝짓기를 위해 지상으로 나오는데 1987년에 이어 올해가 이 브러드 X매미가 기다려온 '결혼의 해'인 셈이다.

일단 땅으로 기어나온 유충은 잽싸게 주변의 식물이나 나무, 펜스 울타리, 전봇대 등 수직으로 된 물체를 기어올라 앞다리의 발톱을 단단히 고정한 채 허물을 벗은 뒤 성충이 된다.

다행히도 성충 매미의 수명은 짧다. 통상 2∼4주를 산다. 5월 중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 성충은 6월 초 그 수에서 절정을 이룬 뒤 6월 말 7월 초면 모두 죽는다. 애벌레로 지냈던 긴 세월에 비하면 날개를 단 매미의 삶은 허망할 정도로 순간이다.

왕성한 번식력

검은 몸통에 빨간 눈을 가진 매미의 공포는 왕성한 번식력에서 비롯된다. 암컷 매미는 나뭇가지 위 40∼50 군데에 각각 수십 개의 알을 낳는다. 성충의 알은 6∼10주 후 부화해 밑으로 떨어진 뒤 땅 속에서 수액을 빨아먹으며 긴 수면에 들어간다. 약 1㎡ 당 수백 개의 유충이 살 수 있어 정절기엔 에이커 당 150만 마리가 번식한다고 한다.

곤충학자들은 브러드 X의 생존 전략은 포식자의 허기를 채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수 억 마리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참새나 다람쥐 등이 아무리 먹어도 번식할 유충이 살아 남는다는 이론이다.

소음과 숫자의 공포

탈피한 수컷이 암컷을 유인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는 매미에겐 생식의 방편이지만 듣는 사람들에겐 더 없는 공포의 소리가 된다. 1987년을 워싱턴 일대에서 보낸 주민들은 수백만 마리가 한꺼번에 울 때 시끄러워 혼비백산할 정도가 된다고 말했다.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사는 수잔 로즈(67·여)씨는 "17년 전 생각을 떠올리면 벌써부터 소름이 끼친다"며 "매미 울음 소리가 얼마나 큰지 전화할 때 상대방이 내 음성과 함께 매미 소리가 들린다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소음만이 아니다. 6월 초순 정절기가 되면 발에 밟히는 게 성충 매미 껍질이고 시체다. 자동차 타이어는 엉겨 붙는 껍질로 검붉은 색을 띠게 된다. 또 죽은 매미에게서 나는 고약한 냄새도 주민들에게 역겨움을 준다.

작은 가지들은 성충이 수액을 빨아먹기 때문에 말라 죽기도 한다. 주민들은 매미가 나무에 기어올라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나무 둘레를 비닐로 감싸는 등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또 살충제 등이 벌써부터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야외 행사의 파괴자 매미는 '파티 훼방꾼'이기도 하다. 매미 출현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5월 중순부터 6월 사이 야외행사 일정을 잡은 주민들은 지금 낭패감에 싸여 있다. 소음도 문제지만 매미들이 무리를 지어 갑자기 머리위로 붕붕 휘젓고 날아다니거나 여기저기 부딪치면 행사를 망치기 십상이다. 이 기간 중 야외 결혼식을 예약한 예비 신랑 신부들이 실내 식장을 구하느라 동분서주하거나 식 자체를 연기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 때문에 워싱턴 포스트 등 동부지역 신문들은 연일 매미의 출현 소식과 함께 그에 얽힌 갖가지 사연들을 전하고 있다. 브러드 X를 연구하는 매니아들의 모임과 웹사이트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미식가들의 호재 불쾌감만 주는 것은 아니다. 땅 밑에서 막 기어 나온 하얗고 부드러운 매미 유충은 개나 고양이에게 더 없는 먹이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저지방 고단백의 이 매미 요리를 즐기는 미식가들은 마치 차갑게 통조림 처리된 아스파라가스를 맛보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워싱턴의 고급 식당들은 갖가지 매미 요리로 미식가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워싱턴 조지타운의 리츠 칼튼 호텔 바에서는 벌써부터 '시케이다(매미) 칵테일'이 팔리고 있다. 호텔에서 일종의 부적으로 매미가 새겨진 검은색 동전 모양의 초콜릿을 손님의 베개 머리맡에 올려 놓는 것도 이 때쯤이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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