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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다음'의 즐거운 실험

입력
2004.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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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기업 '다음'이 제주도로 본사를 이전한다는 뉴스가 보도된 적이 있다.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속담은 수도권 집중현상을 통해 21세기까지도 흔들림 없이 입증되고 있는 한국적 진실이다. 그런데 순매출액 1,400억원이 넘는 큰 기업이 왜 디지털 마인드와 기술로 무장한 700명의 젊은 종업원을 데리고 테헤란 밸리를 떠나 하필 한라산 중턱으로 자리를 옮기려 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여기며 무슨 곡절이 있겠지 하고 생각한다.며칠 전 다음을 움직이는 젊은이들의 얘기를 들어보았더니 그 곡절이란 것이 다름 아닌 꿈이었다. 다음의 비전은 남이 생각하지 않는 아이디어로 '즐겁게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이재웅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다음은 창의력을 갖고 일해야 하는 집단인데, 서울은 너무 복잡하고 오염됐다. 제주도는 섬이라는 약점이 있지만 싱가포르처럼 국제자유도시의 잠재성이 다음의 글로벌 전략에 부합할 것으로 생각했다." 제주도를 '디지털 아일랜드'로 만들어 이를 모항으로 삼고 세계전략을 펼친다는 뜻을 품고 있다.

다음 사람들에게 손짓하는 곳은 많았다. 본사 후보지로 처음에 춘천과 전주 등 수도권 근처를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서울의 영향권을 멀리 벗어날 때 우리가 원하는 새로운 창조적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지방으로 자리를 옮기며 세계를 생각하는 역발상(逆發想)은 기성세대의 머리 속에서는 나올 수 없는 모험인 것 같다.

다음이 제주로 가는 목적은 삶의 질을 높여 사원들로 하여금 창의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지만, 지역공동체를 가치 있게 발전시키는 일도 그들에겐 중요하다. 관광지에 번창하는 하루살이 향락문화에서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공부하고 지식과 정보를 교류하는 새로운 생산적 도시문화의 모델을 지역공동체와 더불어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들에게 제주도는 임지(任地)가 아니라 자녀를 학교에 보내며 생활하는 삶의 터전이 될 것이라고 한다.

다음 사람들은 기성세대와는 다르게 변화를 읽고 있었다. 다음은 국내최고 수준의 디지털 기술인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다음직원이 1,000명만 제주에 상주하면 정보와 지식이 가공되고 유통되면서 서울의 관련기업 사람들과 전문가들이 제주를 왕래하게 되고 다양한 활동이 파생된다고 기대한다. 지역사회는 첨단 지식산업과 휴양관광산업이 역동적으로 결합되는 미래형 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다음은 '디지털 아일랜드'의 프로그램을 갖고 제 발로 지방을 찾아 가겠다고 나섰다. 정보통신 시대에 인터넷 포털서비스의 생명은 얼마나 유용한 정보가 편리하게 유통되고 많은 사람이 접촉하느냐에 달려있다. 본사와 이용자의 물리적 거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다음의 실험은 성공요소를 안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을 중요한 정책과제로 제시하고 추진기구까지 만들었다. 지방마다 쇠락해가는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첨단기업 유치계획에 혈안이 돼 있다. 각종 혜택과 지원책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성공적인 징후는 아직 없다. 인력을 비롯한 정보·지식 기반에서 수도권의 끌어당김은 너무도 강한 반면 지방은 허약하기 때문이다. 더욱 기업이 지방을 기피하는 이유는 자녀 교육을 비롯한 생활여건에서 서울에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다음의 실험은 위험하다. 잘못되면 죽는다.

다음의 실험은 그들의 선택이다. 성공하면 국가균형발전의 파급효과는 클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변화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실험이 성공하려면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 및 지자체의 기업유치 프로그램과 효과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특히 지자체와 주민이 기업을 협상대상자로 생각하지 않고 협력파트너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변화의 씨앗은 발아할 수 없다.

/김수종 수석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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