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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신용카드가 앗아간 지갑속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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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신용카드가 앗아간 지갑속의 행복

입력
2004.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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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벗어나자마자 내 지갑 속에 전에 없던 변화가 생겼다. 기껏해야 공중전화카드와 학생증이 전부였던 지갑이 어느새 다른 물건들로 채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공중전화카드, 학생증과 더불어 채워진 것은 이런저런 신용카드였다. 대학생이 아니었지만 신용카드를 발급받는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신용카드는 늦깎이로 대학에 들어간 나에게 가장 큰 골치 덩어리가 되고 말았다.신용카드는 편리했다. 물론 카드를 사용하면서 대책 없이 낭비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런저런 책을 구입했고 급하게 생활비를 충당할 때 카드를 사용했다. 카드를 함부로 사용하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마땅한 돈벌이 수단이 없는 나에게는 신용카드 사용이 불가피했다. 그리고 얼마 뒤 신용카드는 나의 목을 죄는 부메랑이 되어 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없애버리면 그만이지만 뾰족한 앞날의 대비책이 없는 지금으로서는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언론에 빈번하게 보도되는 신용 불량자들 중에는 지나친 낭비벽으로 신용불량자가 된 할 말없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저 각자의 잘못이 크다고만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신용카드 사용자들에게 카드 사용의 위험성을 일깨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의 힘으로 해결하기 힘든 어려운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들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어쩔 수 없이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이 말 자체가 모순처럼 들리지만 이러한 모순이 우리 사회의 현실임을 부정할 수도 없다. 신용 불량자의 문제가 점차 확대되면서 워크 아웃과 같은 제도가 생기기도 했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조건이 까다로워서 혜택을 받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업이나 가정의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신용카드에 의지해야 하고 또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신용불량자가 되어 가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요즘 내 지갑을 열 때마다 빽빽하게 들어있는 카드와 그 사이사이에 꽂아놓은 영수증에 어지러움을 느낀다. 처음 내 지갑이라는 것을 가졌을 때 그 안에는 가벼우면서도 꽉 찬 무언가가 있었다. 신용카드가 들어있는 자리에 그 대신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진으로 꽉 찬 지갑, 그래서 자꾸만 열어보고 싶은 지갑, 날아갈 듯 가벼운 우리 사회의 지갑을 꿈꾸어 본다. 신용 불량자들을 보다 근본적으로 구제할만한 획기적인 정책이 몹시 기다려진다.

/이은정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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