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돼지돼지코에 엄청나게 큰 입, 전혀 멋있지 않은 콧수염까지. ‘붉은 돼지’의 주인공 포르코 롯소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주인공 중 가장 못 생긴 인물이다. 외모로만 보면 진짜 돼지 얼굴을 한 반인반수의 괴물. 한국 애니메이션 ‘똘이 장군’에서 인민군으로 묘사된 돼지와 쌍벽을 이룰 정도다. 이런 그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멋진 로맨티스트라니….
포르코는 원래 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공군 소속의 잘 생긴 파일럿. 그러나 파시즘을 목도하면서 군에서 제대해 하늘을 날아다니며 돈벌이에 나서는 자유인이 됐다. 그러면서 한때 사랑했던 지나라는 여인을 버리고 국가를 선택한 자신에게 스스로 마법을 걸어 돼지가 된 것이다. 아드리아해의 외딴 섬에서 음악을 듣다 지나를 찾아가 칵테일 한잔을 마시는 포르코. 미래소년 코난이 나이가 들면 포르코처럼 됐을까.
우수에 찬 듯한 포르코의 외모도 그렇지만, 미야자키 감독 특유의 아름다운 비행장면도 놓칠 수 없다. 프로펠러로 추진력을 얻는 포르코의 투박한 붉은 비행기가 하늘을 선회할 때의 그 입체감과 부드러운 움직임은 ‘천공의 성 라퓨타’의 잠자리 모양의 비행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거대 전투기와 또 다른 감동을 준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백사장, 파라솔 밑에서 포르코가 듣던 발라드 음악도 나른하기만 하다. 전체적으로 미야자키의 무정부주의 취향이 듬뿍 묻어나는 작품이다. 1992년작. 전체.
/김관명기자kimkwmy@hk.co.kr
■슈렉
마법에 걸린 공주가 탑에 갇혀 있다. 나쁜 용을 물리치고 그를 구해줄 수 있는 것은 백마탄 왕자 밖에 없다. 전형적인 동화라면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를 구출한 것은 용만큼이나 흉측하게 생긴 괴물이다. 일명 슈렉. 헐크처럼 푸른색 피부에 뿔같은 조그만 귀가 대머리 옆에 삐죽 솟아 있다.
모양이 너무 이상해서 슈렉을 따라가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공주는 고민한다. 그렇지만 외모와 달리 그의 마음은 한 없이 여리다. 은근히 외모 콤플렉스가 있어서 남 앞에 나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만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착한 심성을 갖고 있다.
앤드류 아담슨과 비키 젠슨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슈렉(Shrek)’은 이전까지 곱고 예쁘기만 했던 애니메이션 주인공의 이미지를 한 순간에 뒤엎어 버렸다. 그들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디즈니 애니매이션의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외모지상주의의 틀을 깨뜨리는 것. 절정을 이룬 것은 피오나 공주. 막판에 마법이 풀려 드러난 공주의 외모는 슈렉 뺨치는 기괴한 몰골이었다.
결국 이 같은 반전과 파격이 대중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며 작품의 성공을 가져왔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인공처럼 곱고 예쁘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속편이 올 6월 국내 개봉한다. 더 없이 아름답지 못한 커플이 펼칠 아름다운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2001년. 전체.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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