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반가운 전화를 받고 도산공원 근처에 새로 오픈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패션잡지 ‘바자’의 편집장과 본부장을 지내다 어느 날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돌연 사표를 낸 그녀는 호주로 가 자연과 함께 지내다 얼마 전 귀국했다고 했다.그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패션인으로 유행하는 그 어떤 것도 그녀 안에서 녹아 들어가 그녀만의 시크함으로 다시 표현된다.
그날 역시 그녀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풍만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요즘 가장 유행하는 티블루 컬러의 여성스러운 탑과 검정색의 더블 버튼 피자켓, 그리고 흰색의 슬림한 팬츠를 코디해 입고 나왔다. 그녀다운 착장이였다. 체격이 좀 있는 그녀로서 힙선을 약간 덮는 기장의 재킷과 슬림한 팬츠의 코디는 그녀의 몸매를 날씬하게 만들어 주었고 여성스러운 컬러 감이 있는 탑은 포인트가 되기 충분했다.
그런 완벽한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내 눈을 끌었던 것은 그녀가 들고 나온 핸드백이었다. 젤리 사탕을 연상케 하는 연한 핑크색의 부드러운 고무 재질로 만들어진 그 백은 그레이스 켈리라는 여배우가 들어서 유명해진, 구매하려면 6개월 이상 기다려야 하는 고가 명품브랜드의 켈리백을 패러디한 젤리 백이라고 했다.
어느 패션 회사가 켈리백과 디자인은 같지만 젤리빈 캔디 칼라와 고무 질감으로 오리지날백의 50분의 1 가격으로 만들었고 패션인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했다. 핸드백의 대명사와도 같은 켈리백 패러디에 도전한 회사도 기발하지만 그것을 보고 웃어 넘기는 오리지날 회사도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 날 난 와인과 함께 그녀의 호주생활, 그리고 패션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과연 우리 나라에도 켈리백처럼 다른 회사가 패러디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만한 패션 명품이 있는가. 그날따라 와인 맛이 유난히 텁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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