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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큰 아빠 세차 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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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큰 아빠 세차 하는 날

입력
2004.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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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이나 그 집 식구들만 독특하게 사용하는 은어가 있다. 다른 집 식구들은 그 말을 들어도 정확한 뜻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런 우리집만의 은어 중에 '큰 아빠 세차하는 날'이 있다. 우리 아이들은 하늘이 꾸물거려 비가 오려고 하면 "오늘 큰 아빠 세차하셨나?"라고 말한다.어떤 때는 저희 사촌들끼리 전화를 걸어 묻기도 한다. "누나, 오늘 큰 아빠 세차하셨어?" 그러면 저쪽에서도 대번에 그 말을 알아듣고 이렇게 말한다. "서울에 비 오니? 여기는 올 생각도 않는데." "그럼 서울에 있는 다른 집 큰 아빠가 세차하셨나?"

그것도 일종의 '머피의 법칙'인 것이다. 이제껏 세차를 안 하다가 세차하면 그날이거나 다음날엔 꼭 비가 내린다. 커피잔은 맨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꼭 카펫 위에 떨어진다. 지갑도 돈이 없는 날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꼭 돈이 많이 든 날 잃어버린다.

한동안 가물더니 요즘 비가 예쁘게 내려준다. 우리 아이들 표현을 빌리면 큰 아빠가 일주일에 한번씩은 세차를 하는 모양이다. 앞으로도 형님이 일주일에 한번씩 계속 세차를 해 올해는 가물지 않고 봄과 여름을 났으면 좋겠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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