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6월 9일 목요일, 720여 명의 젊은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그날의 서울을 '기록'했다. 이날 0시부터 밤 12시까지 꼭 24시간 동안 영화, 비디오, 사진, 녹음, 글 등 당시 기록이 가능한 거의 모든 매체를 동원해 CT촬영하듯 서울을 단층촬영한 것이다. "서울은 기록되어야 한다.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를 남겨놓지 못한다면, 최소한 기록해서라도 남겨놓아야 한다. 그것을 10년 후쯤 다시 본다면…."(영화감독 이재용)
그로부터 꼭 10년이 지난 2004년 6월 9일 서울은 다시 기록된다. '한 도시 이야기 9404' 프로젝트는 예술가와 시민,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구분없이 서울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예술적 열정을 모아 만드는 기억의 프로젝트다. 영화감독 이재용과 사진작가 오형근, 설치미술가 최정화, 미술평론가 백지숙, 아트선재센터 김선정 부관장, 현대무용가 안은미 등이 주관했던 10년 전의 프로젝트에 사진작가 구본창 김중만 조세현 황규태 배병우, 영화감독 이현승 김성수 모지은 박진표 등이 합세했다.
프로젝트는 크게 94년 6월 9일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와 일반 시민의 참여로 2004년 6월9일 서울의 모습을 기록하는 이벤트, 두 가지로 이뤄진다.
전시는 문예진흥원 마로니에미술관에서 25일부터 6월 9일까지 열린다. 수많은 일과 다양한 사람들, 사랑과 증오, 활기와 비정, 익명성과 부대낌이 공존하는 서울의 모습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난다. 미술관 갤러리2는 94년 6월 9일 찍은 사진들이 거대하게 벽을 메우고, 당시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인터뷰 내용을 전단지처럼 붙인다. 서울 전역에서 수집된 가지각색의 재활용 가구와 철망 등으로 복잡한 서울의 업무공간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제작된 워크스테이션은 관람객의 쉼터로도 기능한다. 관람객들은 전시장 벽에 그들의 느낌을 낙서하듯 적어놓을 수도 있다. 한편 갤러리1은 촬영된 영상물을 서울 지도 위에 지역별로 편집해 마치 서울 거리를 활보하는 듯 느낄 수 있게 한다. 전시 기간 동안 마로니에미술관의 외벽은 불법 현수막으로 뒤덮여 가짜와 진짜, 싸구려와 세련성이 뒤섞이고 있는 서울을 상징하게 된다.
전시 마지막 날인 6월 9일 0시부터 24시까지 다시 10년 뒤의 서울이 기록된다. 전시 기간 동안 참여 신청을 한 개인·단체들은 자유로운 대상 채집과 촬영, 연출을 통해 서울의 모습을 담아낸다. 단 매체는 요즘 누구라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동영상 카메라와 스틸 카메라로 한정된다. 10년 전의 '한 도시 이야기'가 35㎜, 16㎜ 카메라와 홈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로 기록됐던 것과 비교해도 시대변화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6월 9일 프로젝트는 '아무나 아무거나 아무렇게나'로 명명됐다. 일반 시민의 참여로 서울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나 가능한 이벤트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이날 채집, 촬영된 물건, 사진, 영상물(5분 이내 분량)은 자료로 걸러져 서울역사박물관에 보관될 예정이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은 "이 프로젝트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서울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자칫 망각한 채 살아가는 서울이라는 공간, 숨쉴 틈 없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서울의 하루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조명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그는 " '한 도시 이야기'는 10년마다 새로운 매체, 새로운 개념과 형식으로 계속되는 프로젝트이자 페스티벌로 계승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여 문의 (02)760―4603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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