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여 년 전 백두산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먼먼 길을 돌아 백두산 아니, 중국 이름으로 장백산을 올랐습니다. 지금은 백두산 여행길이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을 만큼 간편해졌지만 그때 만해도 참으로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그렇게 발을 디딘 백두산에서 그 곳 식물들과 가졌던 해후는 제 평생 가장 잊지 못할 감동으로 남아있습니다. 식물도감 속 글자와 그림으로만 보던 북쪽 식물들을 만나던 순간 전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두메양귀비, 구름국화, 담자리꽃나무, 각시투구꽃… . 세월이 한참 흘러 백두산길도 가까워지고, 금강산도 가고, 개성에 공단도 생겼다고 하는데 정말 북한이 가까워 진 것 같으면서도 정말 다른 무엇인가 때문에 답답한 생각이 가득합니다.식물이름을 들여다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같은 식물을 두고 한글로 붙여진 이름이 서로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우선 혐오어라고 생각하는 말과 접두사 '개'자가 들어가는 이름들은 어김없이 바뀌었습니다. 쥐똥나무는 검정알나무로, 애기똥풀은 젖풀로, 개비자나무는 좀비자나무로, 개별꽃은 들별꽃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전혀 혐오스럽지 않고 오히려 친근하게만 느껴지는 이름인데 말입니다.
또 외래어에서 유래된 이름도 전혀 다르게 불리고 있습니다. 방크스소나무는 짧은잎소나무로, 백송은 흰소나무로 바뀌었고, 북한지역의 방언을 따서 청명아주는 좀능쟁이로, 곡정초는 별수염풀로 바뀌었습니다. 남쪽의 지명이 붙은 이름도 의식적으로 달리 부르는데 대구돌나물은 바늘돌나물로, 제주아그배는 좀아그배나무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나마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아 차이가 나는 련꽃, 록두, 련복초 등은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의 차이입니다.
북한에서 1964년에 나온 식물도감과 남한에서 나온 식물도감을 비교해 보았더니 이처럼 다르게 불리는 식물이름이 18%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88년에 나온 도감과 비교하여 보았더니 그 차이는 더욱 커져서 무려 29%에 달하는 식물이름이 다르게 불리고 있었습니다. 점점 더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지요. 실제로 1964년도 도감에서 남한의 이름과 같은 이름으로 쓰이던 식물 중 많은 수가 1988년도 도감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앞으로 통일이 될 때쯤이면 절반 이상의 식물이름이 다르게 불릴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섭니다.
만일 통일이 돼 남북한 식물학자들이 모여 투표라도 한다면 우리에게 친근한 쥐똥나무까지 검정알나무라는 낯선 이름으로 바꾼 것은 반대하겠지만, 리기다소나무의 특징을 딴 세잎소나무, 버즘나무 대신 예쁜 방울나무라는 북한 이름에는 표를 던질 것 같습니다. 용천 폭발사고를 당한 북한 주민을 돕는다는 성금을 모으기에 조금 보태고 나니, 갑자기 진짜 함께 하는 길이 무엇인가 하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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