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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지개발로 훼손 위기/청주 "원흥이 방죽"-"두꺼비의 낙원을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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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지개발로 훼손 위기/청주 "원흥이 방죽"-"두꺼비의 낙원을 지키자"

입력
2004.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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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해가 어스름 질 무렵 새끼 두꺼비들은 대장정을 다시 시작했다. 올 봄 알에서 깨어나 올챙이 시절을 저수지에서 보낸 새끼 두꺼비들이 호수를 떠나 어미들이 사는 구룡산으로 힘겹게 기어올라가고 있었다. 개울 물이 흐르는 좁은 콘크리트 수로를 따라 새까맣게 붙어있는 두꺼비들의 행렬은 언뜻 보면 마치 벌떼 같기도 하고 귀뚜라미떼 같기도 하다.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길이나 논을 따라 뭍으로 오르는 수 만 마리의 두꺼비 행렬이 한 발 내딛기도 어려울 정도로 새까맣게 이어진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두꺼비 탐방을 온 아이들은 돋보기와 쌍안경까지 들이대며 아장아장 걷는 두꺼비들의 이동이 마냥 신기한 듯 탄성을 질러댄다. 새끼 두꺼비를 잡아 먹는 해오라기가 날아다니고 소쩍새 소리가 맑게 들리는 초등학교 운동장 만한 저수지 아래 논 한가운데에서는 아파트 건설을 위해 흙을 파고 택지를 조성하는 포크레인 소리가 요란하다.

두꺼비 보금자리인 구룡산 자락 농업용 저수지인 원흥이 마을 방죽은 충북 청주시 도심에서 의외로 가까웠다. 저수지와 구룡산을 끼고 택지개발이 한창인 산남3지구로 들어가는 입구는 택지 개발로 훼손 위기에 놓인 문화재 발굴이 한창이다. 부지런히 흙을 실어 나르는 트럭과 포크레인 몇 대를 지나치고 나면 '두꺼비를 살려주세요!'라는 플래카드와 깃발이 나부끼는 원흥이 방죽이 나온다. 도심 바로 곁에 어떻게 이런 거대한 숲과 두꺼비 삶터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충북대 천태영(생물학) 교수는 몇 개월 째 이 곳에서 두꺼비와 조류 등의 생태를 관찰하고 있다.

원흥이 방죽은 습지 가운데 드물게 외래종인 황소개구리 등의 공격을 모두 피해가며 두꺼비가 알을 낳고 백로 황조롱이 등 20여종의 희귀 조류와 수생 생물들이 살아가는 생태계의 보물창고다.

양서류인 두꺼비는 3월 이른 봄이면 구룡산에서 나와 원흥이 방죽 저수지로 떼지어 내려온다. 먹거리가 풍부한 저수지에서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고는 다시 구룡산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알에서 깨어난 새끼 두꺼비들은 5월이면 어김 없이 어미의 뒤를 따른다. 뭍으로 올라간 두꺼비들은 2%만 살아 남는다. 나머지는 뱀과 새 등 동물들의 먹이가 돼 건강한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형성한다. 택지 개발로 농사를 그만둔 지 2년 정도 지난 원흥이 마을 묵논은 농약과 사람들의 손길에서 벗어 나면서 두꺼비들에게 더 많은 곤충과 먹이를 제공한다. 두꺼비의 집단산란지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도시에 사는 시민과 학생, 어린이들이 하루 수백 명씩 두꺼비들이 연출하는 장관을 보기 위해 몰려든다. 손에 탐방 노트를 들고 풀숲을 뒤지던 청남초등학교 2학년 양태민(9)군은 "두꺼비가 토끼처럼 깡총깡총 뛰는 것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원흥이 방죽이 마냥 평화로운 곳은 결코 아니다. 택지 개발에 맞서 두꺼비를 지키려는 청주지역 아이들의 힘겨운 싸움이 2년째 이어지고 있다. 아파트를 짓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원흥이 방죽 일대 만이라도 '두꺼비 생태공원'으로 만들자는 게 이들의 소박한 소망이다. 이곳이 두꺼비 집단 산란지임이 밝혀지기 훨씬 전인 1994년 이 일대는 산남3지구 택지개발 예정지로 지정됐다. 한국토지공사는 33만여평에 2만여명이 살 신도시를 건설하고 있다. 이미 분양이 끝났고 부지 조성이 한창이다.

충북지역 42개 환경·시민단체로 구성된 '원흥이 두꺼비마을 생태문화보전 시민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은 방죽 인근에 들어설 검찰청과 법원 부지 만이라도 다른 곳으로 옮겨 이 일대를 두꺼비 생태공원으로 조성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시민 4만여명의 서명을 받는 한편 삼보일배(三步一拜) 시위도 벌이고 있다. 또 12일에는 상경 삭발 시위도 가졌다.

이에 대해 토지공사는 "두꺼비 보호를 위해 실개천 형태의 두꺼비 이동통로(폭 20∼30m)를 설치하고 원흥이 방죽 일대 7,000여평에 공원을 조성키로 했다"며 "자연 생태를 최대한 보존하면서 개발하고 있는 만큼 더 이상 양보는 어렵다"고 맞서고 있다.

'생태교육연구소 터'의 박완희 사무국장은 "토지공사가 방죽과 저수지를 보존한다지만 개발계획대로 하면 저수지는 법원·검찰청의 연못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고 아파트 단지 사이에 낄 이동통로에도 소리에 민감한 두꺼비들이 모여들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사람들의 이 같은 '다툼'에도 아랑곳 않고 두꺼비들은 오늘도 구룡산을 향한 대이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다만 두꺼비 보금자리에마저 아파트를 지으려는 사람들의 욕심이 이대로 지속된다면 새끼 두꺼비들의 대장정은 올해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청주=김호섭기자 dream@hk.co.kr

사진=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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