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 눈 버렸다."최근 한 달간 무용을 보러 다닌 한 평론가가 투덜댔다. 왜냐. 홀랑 벗은 남자들의 춤을 줄줄이 봤기 때문이란다. 아니, 그 좋은 구경이 어때서? 답인즉 꼭 벗어야 할 이유가 있어서 벗고 나오면 괜찮은데, 어떤 작품은 이유도 없이 그러니까 나중에는 불쾌해지더란다. 그는 "그래 벗었다, 어쩔래?" 하고 뻔뻔스럽게 묻는 듯한 '배째라' 식 도발에 그만 기분이 팍 상해버렸다고 했다.
벨기에 무용단 세드라베의 '믿음', 독일 안무가 사샤 발츠의 '육체', 프랑스 출신 안무가 자비에르 르로이의 '미완성 자아', 한국 안무가 안은미의 '제발 제 손을 잡아주세요'…. 최근 한달 간 알몸의 남자 무용수가 등장한 작품들이다. 혹시 못 보신 분들, 애석하신지.
영화도 아니고, 실제 극장 무대에서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건장한 남자가 관객을 빤히 보면서 이리저리 뒹굴거나 덜렁덜렁 흔들리는 성기의 실루엣도 선명하게 무대를 가로질러 활보하는 모습은 사실 좀 당혹스럽다. '남녀칠세부동석'의 동방예의지국에 '상전벽해'도 유분수지, 어디 남자가 많은 사람 앞에 홀딱 벗고 돌아다니냐. 그런 생각을 하는 노인이 봤다간 기절할 만큼 적나라한 알몸을 실컷 본 그 평론가(여자) 왈, "처음엔 철렁 했지만, 어떻게 생겼나 얼른 봤다. 별 거 아니데."
현대무용이 옷을 벗은 지는 오래됐다. 1920년대부터 벗기 시작했다. 1960년대 히피 문화 성행기에 한참 유행했고, 요즘 와서 또 벗는다. 처음엔 여자가 가슴을 노출하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요새는 남자도 자주 벗고 있다. 그러나 국내 무대에서는 여전히 보기 드물다. 더군다나 남자의 알몸은. 그런데 최근 한달 간 여러 작품에서 갑자기 봇물이 터졌다. 한꺼번에 들이닥친 충격에 눈이 놀랄 만도 하다.
무용이 몸의 예술인 만큼 몸,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은 작품에 따라서는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눈 버렸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제대로 벗은 남자들의 춤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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