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7시 대학로. 영화 '바람난 가족'의 임상수 감독은 연극 한 편을 보러 나왔다. '그때 그 사람들' 시나리오 작업을 마치고 캐스팅을 위해서다. 그는 "연극 배우 없으면 먹고 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연극배우가 영화판에 진출하는 건 자연스런 시대의 대세가 아닌가요?"
대학로를 지나 충무로로
지금 충무로는 대학로의 땀과 눈물 위에 서 있다. 상반기 최고 기대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5일 개봉한 '효자동 이발사'는 국민배우로 떠오른 주연 송강호를 포함, 손병호 조영진 등 주요 배우 대부분이 연극배우 출신이다. 송강호의 차기작 '남극일기'의 주연급 배우 여섯 명도 거의 모두 연극판에서 데려갔다. 작년 '웰메이드' 영화 가운데서도 작품성과 흥행성을 갖춘 작품의 주요 연기자는 대학로에서 건너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민식 설경구 송강호 조재현 등 이미 스타로서 큰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주연급 뿐 아니라, 작년 충무로 최대의 수확이라 불렸던 박해일('살인의 추억' '질투는 나의 힘')을 비롯해 이문식('황산벌'), 성지루('바람난 가족'), 오달수('올드보이'), 박노식·김뢰하('살인의 추억') 등 빛나는 조연들도 대학로에서 이적한 배우들이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연기의 내공을 닦아온 연극배우를 유입해 충무로는 더 탄탄한 인적 자본을 갖추게 되었다. 연극배우인 김지숙 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이 "한국영화를 이만큼 크게 한 게 대학로의 힘 아닌가? 충무로가 기초예술인 연극에 투자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나, 대학로로 돌아간다
거꾸로 충무로 스타들의 연극계 등장도 활발하다. 올 연극계의 초대형 프로젝트인 '연극열전'은 충무로에서 귀환한 배우들의 후광을 업고 호응을 얻고 있다. 흥행 연극을 발판 삼아 충무로에 진출한 배우들이 '모천'(母川)인 대학로로 회귀하고 있다. '에쿠우스'의 조재현을 필두로 '남자충동'의 오달수, '한씨연대기'의 강신일·이대연, '관객모독'의 기주봉이 한층 더 친숙해진 얼굴로 관객을 맞았다. 앞으로 '택시 드리벌'의 정재영, '청춘예찬'의 박해일이 이 흐름에 가세할 예정이다. 최근 막을 내린 '해일'은 유지태와 오달수가 호흡을 맞춰 화제가 됐다.
그러나 대학로와 충무로의 활발한 교류 뒤엔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배우 성지루의 지적대로 "이제 연극배우가 영화로 간다고 해서 연극계에서 욕을 먹는 풍토"는 아니다. 그러나 오달수의 말처럼 "최저 생계도 잇지 못하는 데 영화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절박한 상황은 3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에필로그
8일 대학로 새벽 5시. 동이 틀 때가 되서야 임상수 감독은 연극배우들과의 술자리에서 일어섰다. "대학로가 공들여 키운 열매를 거저 따가려고 하는 것 같아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것이 어찌 감독 개인의 책임일까. 기초예술인 연극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관심, 이것만이 대학로와 충무로의 상생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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