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쇼크와 고유가, 미국의 금리인상설 등의 잇단 악재로 증시가 10 거래일 만에 100포인트 가량 하락했다. 특히 이번에는 지난 달 27일부터 2조 5,000억원을 내다판 외국인 매도세가 집중된 하락이란 점에서 과거와 차이가 난다. 작년 하반기부터 한국 경제의 수출 증가세에 힘입어 올해의 성장률이 5%를 상회할 것으로 낙관하며 거시경제 여건을 좋게 보던 외국투자자들이 갑자기 셀 코리아에 나선 것인가 걱정의 목소리가 높다.일부 증권전문가들과 언제나 낙관파인 재경부 관료들은 한국의 펀더멘탈에 이상이 없기 때문에 셀 코리아는 결코 아니라고 항변한다. 최근 주가급락은 높아진 외국인들의 차익실현 욕구 때문인데, 단기차익을 노리고 들어온 헤지 펀드들의 급매물은 일단락되었으며, 외국인 매수단가를 감안하면 급격한 추가하락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기 때문일까, IMF 금융위기를 당했던 서민들에게는 펀더멘탈이 좋기 때문에 큰 탈 없을 것이란 소리가 어쩐지 공허하다. 물론 1,40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로 인해 1997년과 같은 형태의 외환위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우리 경제를 둘러싼 미시적 경제구조의 문제점을 돌아볼 때 낙관만 할 수 없는 심각성이 존재한다.
우선 정책운영의 주체인 참여정부 경제관료들의 기본원칙이 YS나 DJ 정부 시절과 달라진 것이 있는지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인기를 의식한 탓인지 철저한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고자 하는 철학이 없는 듯 보인다. 그들의 땜질식 처방과 모르핀적 대응책들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골병이 들어가는 중증 중독성 경제구조를 만들고 있다. 관료들은 시장 인프라를 개혁하고 정비하는 구조조정처럼 해야 할 일들은 하지 않고, 생존능력이 없어 퇴출해야 할 기업들을 감싸고 연명시켜 시장규율을 훼손시키는 등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서슴지 않는 역선택을 자행하고 있다.
시장경제의 주역으로 자부하는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성장이냐 분배냐라는 이분법적 논란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성장이 맞다. 그러나 어떠한 방법의 성장전략이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발전을 담보하는 것인가? 재벌들이 향수에 젖어 있는 압축성장시절의 불균형성장전략은 더 이상 효율적이지도 않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균형성장전략이다. 이는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위협인 양극화를 극복하며 모두가 균형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뜻하는데 과연 이것이 재벌들이 주장하는 성장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대기업 귀족 노조들의 강성 노동운동이 부메랑이 되어 황금알을 낳는 기업을 죽이고 실업률을 높이며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등의 부정적인 고용구조를 만들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최근의 증시 급락은 무엇보다 일부 외국계 투기자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 경제가 구조개혁을 통해 근본적 체질을 강화하고 신뢰를 회복하면 외국계 장기자본은 물론 국내 부동자금이나 제도보완 후의 각종 연기금들도 자발적으로 장기투자에 나서게 되므로 투기세력의 위협을 겁낼 필요가 없어진다. 허약한 체질의 환자는 감기 바이러스만 들어와도 이내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악화되듯이, 우리 경제가 구조적으로 허약하기 때문에 헤지펀드와 같이 투기적 펀드들의 장난질에도 증시가 쉽게 쓰러지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구조개혁을 포기한 듯한 상태에서는 내수부진, 과다한 수출의존, 금융시장의 동맥경화현상 등의 구조적 취약성이 실물경제의 거울이라는 증시를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이번 외부충격으로 인해 하락한 경쟁국들의 증시 중에서 왜 유독 우리 증시가 가장 하락 폭이 컸는지를 곰곰이 생각할 때이다.
/권영준 경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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