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모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50대 남자 교사 A씨는 신학기가 되면 "아이 때문에 상담이 필요한데 밖에서 만나도 좋다"며 학부모에게 전화를 건다. "발표력이 떨어진다" "좀 늦된 것 같다" 등 아이의 약점을 들먹이면 효과는 바로 나타나 돈 봉투가 건네진다. 학부모가 자신을 잘 찾아오지 않으면 학부모 모임에서 학부모와 학생의 흠을 잡거나 학교 내 군기반장으로 통하는 '질서반장'을 통해 아이를 괴롭혀 결국에는 학부모를 학교로 불러들인다. 이런 수법으로 그는 올해 5명의 학부모에게서 20만∼30만원씩 촌지를 받았다. 그는 한술 더 떠 이동통신회사에 다니는 동생을 위해 휴대폰 가입 시 자신을 통해 줄 것을 직접 담임을 맡고있는 3학년 아이들에게 부탁하기도 했다.11일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가 공개한 촌지 및 불법찬조금 고발사례는 학교 내의 촌지관행이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오히려 교사들은 더욱 대담해지고 수법도 한층 교묘해지고 있다.
서울 송파구 모 초등학교의 50대 여교사 B씨는 돈 액수까지 정해 노골적으로 촌지를 강요했다. B씨는 "수표나 상품권은 받지 않겠다"며 70만원에서 200만원까지 현찰을 요구했다. 심지어 상사의 주소로 보이는 곳으로 유기농 식품을 1개월에 3번 택배로 보내 줄 것도 부탁했다. 명품도 그의 사냥 대상이었다. 한 학부모가 B씨의 명품 수수 내용을 녹음해 찾아갔더니 그는 "나는 명품의 '명'자도 모른다"고 잡아떼다 결국 "촌지 요구는 없던 것으로 할 테니 녹음을 지워달라"며 매달렸다.
촌지성 불법찬조금을 걷은 학교도 있었다. 대전의 한 공립고교는 학급당 20명 가량의 학부모 대의원을 뽑아 300만원씩 불법찬조금을 거뒀다. 이 돈은 교사들의 야식비 및 회식비 외에도 명절과 스승의날 담임교사에게 주는 촌지(20만원)로까지 쓰였다. 이 학교는 "계좌추적을 당할 수 있으니 임원 부모의 친인척 명의로 통장을 개설하라"며 은밀한 거래방법까지 지시했다.
3월 말 이후 참교육학부모회에 신고된 촌지와 불법찬조금은 모두 115건. 지난해 같은 기간 접수 건수 50여건의 2배를 넘는다. 은밀하게 주고받는 촌지의 속성상 실제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참교육학부모회는 추정했다.
박인옥 사무처장은 "촌지가 줄기는 했지만 이제는 불법찬조금이나 불법 학교발전기금 조성 등의 형태로 학교가 거액의 돈을 학부모로부터 거둬가고 있다"며 교육 당국에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했다.
참교육학부모회는 이날 경기지역의 촌지 교사를 부패방지위원회에 신고했으며, 12일에는 불법찬조금 학교에 대한 감사를 교육인적자원부에 요구할 예정이다. 그러나 경기지역 촌지 교사를 담임에서 바꿔달라며 서명운동을 벌였던 학부모 40여명은 예정과 달리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았다. 한 학부모는 "문제가 크게 비화돼 대다수의 좋은 선생님들이 매도 당할 일이 생길 것 같아 불참했다"고 말했다. 이날 참교육학부모회가 공개한 홈페이지 상담코너에 올라 있는 한 학부모의 글은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스승의 날이 무섭습니다. 아니 이번 주가 무섭네요. 티나지 않게 (스승의 날) 전날에 선물해야 겠죠. 티나지 않게 해주길 바라니까요."
/김영화기자 yaa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