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무엇이고, 문학은 또 무엇인가.백담사 회주 오현(五鉉·72) 스님과 신경림(69) 시인이 승속을 오가며 아름다운 만남을 가졌다. 두 사람은 지난해 6월부터 열 차례 백담사(강원 인제군 북면)에서 만나 여행과 사랑, 환경과 욕망, 통일과 전쟁 그리고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인은 선승에게 비단을 덮어 주었고, 선승은 시인에게 옥돌을 다듬어 주었다'(詩爲禪客添錦花 禪是詩家切玉刀)는 중국 금나라 원호문(元好問)의 말처럼 스님과 시인은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10일 '신경림 시인과 오현 스님의 10일간의 만남'(아름다운 인연 발행)이라는 대담집으로 나왔다. 책은 여행 이야기로 시작한다. 시인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돌아다닌 것을 꽤나 좋아했다"며 "여행이야말로 내 문학의 모티프"라고 말했다. 그러자 스님은 "인생이란 시작도, 끝도 없는 떠돌이 여행"이라며 "그러나 사람들은 무조건 빨리 내달려 종점에 이르려고만 한다"고 꼬집었다.
시인은 상처만 받은 짝사랑 이야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버지와의 관계, 김일성 노래를 불러 감옥에 갔던 치기어린 젊은 시절을 솔직하게 들려준다. 스님 역시 밀양의 암자에 머슴으로 입산해 보살의 딸을 사랑한 이야기와 문둥이 부부를 따라 다닌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놓았다.
못다한 이야기가 있는지 두 사람은 대담집 출간에 맞춰 10일 백담사에서 다시 만났다. 스님이 먼저 시중유화(詩中有畵)라는 말을 인용, "좋은 시에는 그림이 있는데, 신경림 시인의 시는 그림 속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는 덕담을 하자, 시인은 "스님과 대화를 통해 불교를 조금은 알게 됐다"며 고마워했다.
시에 대해서는 생각이 서로 조금 달랐다. 시인은 "시가 말씀 언(言)과 절 사(寺)가 합쳐진 것이라고 해서 절에서 쓰는 말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시정잡배가 사용하는 잡스러운 것이 시"라며 "아름답고 고상한 것은 시가 아니며 생활에 찌들어 있는 것이 바로 시"라고 정의했다. 반면 스님은 "가장 귀한 소리이기도 하고, 가장 잡스러운 소리이기도 한 것이 시"라며 "둘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와의 인연은 스님도 만만치 않다. 문학 청년들이 암자에 찾아와 시와 시조를 보여주면서 인생이 어떻고 문학이 어떻고 떠들어대는 것을 보고 "그 따위 글은 하룻밤에 100편도 쓰겠다"고 큰 소리치고 밤새 끙끙거리며 시와 시조를 썼다는 오현 스님이다. 그 사건을 계기로 스님은 한동안 시와 시조 짓기에 미쳐 있었다.
욕망에 대해 시인은 "욕망을 못 버려 갈등이 있고 그 때문에 문학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으나, 스님은 "욕망이란 버리고, 버리지 말고 할 것이 없다"며 "조금만 먹어도 되는데 욕심을 부려 많이 먹으려는 것이 욕망"이라고 했다.
통일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인식을 같이 했다. "같은 민족끼리 숨통을 트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스님의 말에 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님은 "이번 대담집은 훌륭한 시인과 무식한 스님이 인생과 사랑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백담사 계곡 물소리처럼 청정한 소리로 풀어 놓은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인제=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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