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만, 홍콩, 중국 등 중화권에서 한류 열풍이 주춤하고 있다. 그 이유를 알려면 한류 열풍의 원인부터 파악해야 한다. 한류 열풍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한국 배우의 외모와 드라마, 영화 등 작품의 질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 답은 엉뚱한 곳에 있었다.
대만의 유력 일간지 쯔여우시바(自由時報)의 한국연예담당 통신원으로 서울에 머물고 있는 옌링쥔(顔伶郡·26)씨를 만나 한류 열풍의 허와 실을 들어봤다. 그는 대만에 드라마 '겨울연가'를 소개해 한류 열풍에 일조한 주인공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능통하다.
대만에서 일어난 한류 열풍의 시초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 처음엔 대학가 영화동아리에서 상영하다가 인터넷을 통해 알려져 극장 개봉으로 이어졌다. "과거 중화권에 알려진 한국의 이미지를 완전히 깬 작품이죠. 그전까지 한국은 남성중심사회라서 남자가 여자를 잘 때리고 집안 일 하나도 안하고, 여자는 결혼하면 무조건 회사 그만두는 것으로 알았거든요."
'엽기적인 그녀'는 정반대였다. 여자가 제 의견을 당당히 밝히는 것은 물론, 남자를 쥐락펴락 한다. 그 덕에 한국의 남녀차별 이미지가 깨지면서 대만인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토대가 생겼다는 것이다. 최근 한류 열풍이 주춤한 것은 주 시청자층인 여성들이 공감할 만한 작품이 없기 때문. 요즘은 드라마 '천국의 계단'이 조금씩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류 열풍은 엉뚱하게도 한국 성형 수술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처음에는 한국 여배우들이 너무 예뻐서 모두들 놀랐죠. 나중에 성형 수술때문이라는 걸 알았어요. 인터넷을 통해 채림 한고은 김남주 등의 성형 전, 후 사진이 퍼졌어요. 상대적으로 전지현의 인기가 높은 것은 성형을 하지 않았다고 알려졌기 때문이죠."
그는 "한류 열풍을 타려면 대만부터 공략하라"고 조언한다. "대만은 홍콩과 중국, 동남아로 나가는 출구에요. 중국은 대만의 반응을 우선 살피기 때문에 대만에서 뜨면 바로 중국까지 이어지죠. 홍콩과 동남아는 말할 것 없고요. 한국 연예인들, 대만을 자주 방문하세요."
대만의 주 시청자층이 20대 여성 및 30, 40대 기혼 여성이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들은 단순한 시청자를 넘어 관련 산업의 실제 소비층. 드라마나 영화가 뜨면 음반, DVD, 소설, 화보집이 곧바로 팔려 나간다.
"대만은 중국과 달라서 사람들이 정품을 선호해요. 중국에서는 불법 복제품 때문에 연예인들이 유명세만 얻을 뿐 돈은 못 벌지만 대만에서는 관련 상품을 개발하면 상업적으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어요. 따라서 기획이 중요하죠."
/최연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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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액션…중화권서는 식상"
옌링쥔씨는 "대만에서 떠 한류 열풍을 일으킨 한국 드라마, 영화는 모두 20∼40대 여성을 겨낭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부드러운 남자' 배용준이 등장하는 '겨울연가'와 여성의 눈물샘을 자극한 '가을동화' '인어아가씨'가 그렇다. 반면 '쉬리' '친구' '올인' 등 선 굵은 남성 영화나 드라마는 모두 처참할 만큼 실패했다. 그 이유는 뭘까.
쉬리="두 남자가 총을 겨누며 싸우는 모습은 1980년대 홍콩의 '영웅본색' 시리즈를 연상하게 해요. 중화권에서는 질릴 만큼 봤죠. 작품 속 액션이 홍콩 영화보다 특별히 낫다거나 색다른 점도 없었고요."
올인="마찬가지에요. '정전자' '도신' '지존무상' 등 카드게임을 다룬 도박물은 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 홍콩 영화계를 휩쓸었어요. 도박물이라면 중화권에서는 지겨워 해요."
친구="대만에서 1980년대 한국 학원가 정서를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요. 사는 모습이 달랐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공감한 향수는 없고 오로지 장동건 얼굴과 액션만 기억에 남아요."
태극기 휘날리며="대만에서 6월 개봉 예정이에요. 개인적으로 2시간 반 동안 울면서 봤어요. 너무 감동 받았어요. 그렇지만 대만에서 성공하기는 힘들 거에요. 우선 대만 사람들이 한국전쟁을 모르고 관심도 없어요. 한국전쟁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려면 남북전쟁, 베트남전, 2차 세계대전 등을 소재로 돈을 버는 미국만큼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야 할 거에요."
/최연진기자
■옌링쥔은 누구
대만의 국립정치대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2002년 한국관광공사 대만사무소에 취직했다. 여기서 드라마 '겨울연가'를 본 후 '겨울연가 여행안내서'를 발간,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책 출간과 동시에 대만 TV에서 '겨울연가' 방송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한국 통신원도 맡았다. "취재하기 너무 힘들어요. 한국 언론인들의 배타성과 연예산업 관계자들의 비협조적인 태도가 문제에요." 한국말을 하면 오히려 기자회견장 입장을 거부 당하기 일쑤여서 요즘은 유창한 영어를 쓴다. "그러면 무조건 통과시켜줘요. 정작 한국어로 알아듣도록 설명하면 막고 못 알아듣는 영어로 말하면 통과시켜주니 우스워요."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기로 마음 먹고 통신원 일을 하면서 연세대 대학원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있다. 공부가 끝나면 대만에 돌아가 한국어 전문학원을 차리는 게 꿈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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