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진보 개혁노선을 표방해 온 천정배 의원이 11일 집권 과반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새 원내사령탑에 선출됐다. 천 의원은 경선 기간 중 이해찬 의원의 '속도조절론'에 맞서 줄곧 '개혁 강화론'을 주창했다는 점에서, 그의 당선은 참여정부 2기 국정 운영과 맞물려 사회 각 분야의 개혁 작업을 더욱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 50세인 천 원내대표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함께 여권내 '50대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정치권내 세대교체 바람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천 대표는 이날 당선 기자 회견에서 "내가 선출된 것은 변화와 개혁이라는 총선의 민의에 조금 더 부합했기 때문"이라며 "원내운영을 더 철저히 개혁하는 방향으로 해달라는 기대도 반영됐다"고 말했다. 합리적이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개혁을 쉼없이 계속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 측근은 "DJ정부 시절 주요 개혁과제가 집권 말기로 밀리면서 실패하지 않았느냐"면서 "여당이 힘을 갖고 있는 집권 초기에 강도높은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게 천 대표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언론·사법 개혁과 국가보안법 개폐 등 각종 민감한 개혁 과제들이 17대 국회 전반기에 전격 추진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천 대표는 이와 관련, 최근 기자들과 만나 "언론·사법개혁은 사회 각종 아젠다 중에 맨 우선 순위에 있는 과제"들이라며 "경제정책 역시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천 대표는 특히 당·정 분리 및 중앙당 축소와 함께 원내정당화가 점차 착근되는 상황에서 과반이 넘는 집권여당의 지휘봉을 잡음으로써 정국 운영에서도 한층 더 넓은 입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천 대표가 경륜이 다소 부족한데다 개혁 추진 과정에서 '원칙'에 집착할 경우 자칫 상생의 정치가 요구되는 대야 관계에서 파열음을 빚을 수도 있다. 천 대표도 이를 의식한 듯, 이날 "야당과 끈질기게 대화하고 협상해 유연하게 '윈윈'의 합리적인 타협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천 대표 체제 출범으로 당내 역학 구도의 변화도 예상된다. 천 대표를 적극 지지했던 정동영 의장과 신기남 상임중앙위원 등 당권파가 재야출신그룹에 판정승을 거뒀다는 점에서 당분간 당권파가 당의 주도권을 잡게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천·신·정' 트리오의 경우 기본적으로 협력 관계는 유지하면서도, 내부에서 팽팽한 견제와 긴장 관계가 형성될 개연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千 "개혁과 안정 조화 추구"
신임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당선소감으로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총선 민의에 대한 당선자들의 응답"이라며 "개혁과 안정을 조화롭게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야당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끈질기게 대화와 협상을 하고 유연하게 합리적인 타협을 모색하겠다. 물론 정쟁이나 원칙에 어긋나는 일에 대해서는 되도록 상대를 안하고 상생의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라크 파병, 언론개혁에 대한 소신을 밝혔었다.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당내 충분한 협의를 거친 다음에 발표하겠다. 또 정책위 산하에 기획단을 둬서 구체적인 개혁의 로드맵을 준비하겠다."
―현 경제상황 대책은 뭔가.
"오늘 선출되자마자 정부측과 긴급 당정협의를 준비하고 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경제회복과 민생안정이다."
―중앙당과의 관계는.
"중앙위, 상임중앙위 의결은 원내서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운영하겠다."
―청와대와의 관계는.
"당정분리는 해야 되겠지만 긴밀한 협력관계이다. 다만 과거처럼 당이 청와대나 정부에 일방적으로 종속되는 문화는 극복하겠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천정배 대표
소신의 개혁파 정치인으로 통하는 3선 의원. 2001년 민주당 정풍 쇄신 운동을 주도했고,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때는 현역 의원들 중 유일하게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기도 했다. 신당 창당과정에서도 강경한 입장을 고수, 정동영, 신기남 의원과 함께 '천·신·정 탈레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원칙주의자로 포용과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부인 서의숙(49)씨와 2녀. 전남 신안·50세 목포고·서울대 법대 민변 창립회원 국회 정치개혁특위 법사위 간사 15,16대 국회의원
●홍재형 정책위의장
김영삼 전대통령시절 부총리 겸 재경원장관을 지내면서 금융실명제와 부동산 실명제를 도입했던 재선의원. 신중한 성격으로 선비풍의 매너를 지녀 정계 안팎에서 '영국신사'로 통한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와 정견이 맞지 않아 충북도지부장직을 내놓고 한동안 겉돌기도 했다. 정책성향은 다소 보수적이라는 평. 전윤숙(67)씨와 1남 1녀. 충북 청주·66세 서울대 상대 대통령 경제비서관 수출입·외환은행장 재무장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영·호남 계파대결 경선후유증 우려
열린우리당이 11일 원내대표 선출을 일단락 짓긴 했지만, 경선 과정에서 파벌 형성 흐름을 뚜렷이 드러내면서 향후 상당한 후유증을 예고했다. 특히 다양한 세력간 파벌화 움직임이 당내 영·호남 대결이라는 지역구도 양상으로까지 번질 조짐을 보여 천정배 새 원내대표에게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먼저 경선 과정에서 드러난 계파간 세력화 움직임의 경우 우선 지난 6일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염동연 당선자를 중심으로 한 당선자 53명 모임이 꼽힌다. 이날 모임엔 대선 당시 노무현 선대위 관계자 등 친노(親盧) 직계그룹, 참여정부 관료 출신, 친 정동영계 영입파 등이 참석해 원내대표 선출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석자들은 "당 진로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눈 식사 모임"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실제 원내대표로 천 의원을 지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상당했다는 후문이다. 참석자들은 모임을 정례화 하기로 하고, 김낙순 강창일 당선자를 간사로 뽑기도 했다. 염 당선자 등 참석자들 상당수가 호남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호남 세력 결집 성격이 짙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이러자 대표 경선을 하루 앞둔 10일 저녁에는 영남 지역 인사들도 회동을 가졌다. 조경태 김맹곤 최철국 강길부 당선자 등이 모인 이 자리에서는 원내대표로 이해찬 의원을 지지하는 문제가 논의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참석자는 "6·5 재보선 문제 등을 논의하는 자리였다"고 밝혔지만 당내 영남권 소외 분위기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컸다는 후문이다.
특히 건강상의 이유로 참석하진 못했으나 영남 인맥의 좌장격인 이강철 국민참여운동본부장이 모임을 주도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총선에서 정동영 의장의 노인폄하 발언 때문에 큰 피해를 봤다"는 반발이 여전한 영남권 인사들이 염 당선자를 위주로 한 호남 출신 당선자들의 결집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모였다는 해석이다. 당권과 원내대표 모두 호남 출신이 맡으면 안된다는 인식도 컸다는 후문이다. 실제 일각에선 "천 의원의 원내대표 당선으로 호남 출신인 '천·신·정'이 당권과 원내를 모두 장악하게 됐다"며 "영남 지역 목소리를 반영할 통로가 없어진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이 와중에 유시민 김원웅 의원을 비롯한 개혁당 출신 당선자 10여명도 6일에 이어 선거 당일인 11일 오전 연이어 모임을 갖고 이해찬 의원 지지 문제를 논의했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벌써부터 당내 특정지역과 특정세력을 위주로 파벌화 하는 조짐이 나타나 역풍을 맞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특히 전국정당화를 지향하는 우리당이 지역 파벌 조짐을 보이는 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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