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부쩍 중국 편승론이 대두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아예 '미국의 시대는 갔고 이제는 중국이다'라고 선언하며 '뜨는 중국'에 시의적절하게 편승하지 못하면 국가 백년대계를 그르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 중시 성향은 학자, 정치인, 기업인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까지도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중국 경제의 성장 속도와 한국의 대중(對中) 경제 의존도를 감안할 때 이러한 발상이 있을 법도 하다. 20∼30년 안에 중국이 종합적 국력 면에서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고, 이미 중국은 한국의 제일 큰 수출시장이자 투자대상국으로 자리잡고 있다. 게다가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경제 긴축 발언 한 마디가 한국의 주가 폭락과 원화 절하를 초래하는 실정이고 보면 중국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외교면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중국은 동북아에서 유일하게 미국에 '노'라고 말할 수 있는 나라일 뿐 아니라 북한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통해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나라다. 최근 북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외교적 행보에서 이는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이제 종이 호랑이가 아니라 나는 용의 모습으로 발 빠르게 변신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편승론을 기정사실화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미국의 패권적 지도력은 건재하다. 중국 스스로가 미국과 안정적인 전략적, 외교적, 경제적 협력관계 유지를 최우선적 과제로 설정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미국의 힘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이 중국 경제에 의존하는 것 못지않게 중국 역시 미국 경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미국 중심의 현상 유지 질서 속에서 국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이다. 따라서 한미일 3국 공조로 유지되고 있는 동북아의 전략적 안정을 깨고 싶은 의도가 없어 보인다. 이러한 중국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고 중국 편승론 운운하며 동북아 지역 질서의 혼란을 자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대접받는 것도 한미동맹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관계에서 떨어져 나와 과거 조공체제에서처럼 중국의 변방으로 전락한다면 지금과 같은 대우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중국 편승론은 중국의 오판을 야기할 수도 있다. 오르간스키라는 미국 학자에 따르면 강대국 간에 급격한 세력 전이가 일어날 때 대규모 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즉 도전국(중국)의 국력이 패권국(미국)의 국력에 육박하지만 도전국의 위상 변화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이들 간에 무력 충돌이 촉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중국 편승은 중국 중심의 세력 전이를 가속화시키면서 이 같은 개연성을 가시화시킬 수 있다. 중국 편승론의 함정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생존과 번영은 한미동맹 또는 중국 편승이라는 배타적 선택 논리로 담보될 수 없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의 모든 나라와 선린관계를 도모하는 실용적 균형외교만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공동 평화와 번영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이다. 편가르기 외교보다는 한미동맹을 기본축으로 하여 동북아에 포괄적 집단 안전 보장 체제를 구축하고, 다자주의 무역질서에 기초해 역내 자유무역지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최선의 전략적 선택이라 하겠다.
문정인/연세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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