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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류인생 조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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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류인생 조승우

입력
2004.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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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조승우(24)가 '하류인생'의 주인공을 맡는다고 했을 때 충무로에서 기대보다 우려가 많았다. 2000년 데뷔작인 '춘향뎐'의 곱디고운 미소년 이몽룡과 2003년 '클래식'에서 보여준 순수한 청년 준하의 이미지. 결코 '하류인생'의 3류 건달 최태웅과는 맞지 않아 보였다. 더욱이 예고편에서 "한번 더 까불면 죽여 버린다"고 외칠 때의 비음 섞인 유아적 목소리로 과연 1950∼60년대 거친 주먹세계를 제압한 태웅을 연기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러나 배우는 배우였다. 대역을 쓰지 않고 진짜로 때리고 맞기를 6개월여. 그는 임권택 감독이 바라는 최태웅이 됐다. 그것도 고교시절 멋 모르고 주먹만 날리던 어린 최태웅이 아닌, 알 것 다 알고 살아온 30대 중반의 건달 가장 최태웅으로 다시 태어났다.

촬영 하면서 많이 다쳤을 것 같다.

"감독이 원한 건 실전이었다. 주먹 한 방에 두세 바퀴 구르며 나가 떨어지는 그런 액션이 아니라, 때리면서 자신도 맞아야 하는 현실적 액션이었다. 처음에는 대역을 써서 찍었는데 그분들이 계속 다쳐 실려나가는 게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래서 후반 촬영 때 "내가 직접 찍고 싶다"고 했더니 감독님이 "진작 말하지…"라며 반기셨다. 이후 액션장면을 몰아서 찍었고, 이전에 찍었던 것은 모두 버렸다. 손등이 까지고 가슴팍은 멍들고. 내상을 입지 않은 게 다행이다."

예고편과 달리 액션영화가 아니다.

"그렇다. 사실 예고편을 찍을 때는 액션장면이 담긴 필름밖에 없었다. 최태웅은 '장군의 아들'의 김두한처럼 싸움을 '기깔나게' 잘 하는 영웅이 아니다. 오히려 험한 시대에 눌려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연약한 인간, 적당히 우애와 가족애가 있고 적당히 쓰레기 같은 그런 건달이다."

1980년 생이 1950∼70년대 삶을 연기했다.

"사실 촬영현장에는 감독님을 비롯해 신중현 정일성(촬영감독)선생님 등 당시를 직접 체험한 산 증인들이 많이 계셔 도움이 많이 됐다. 당시 명동은 '화려하면서도 슬픈 곳'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과거 영화판 현장을 찍으면서 그때 선배들이 얼마나 힘들게 영화를 찍었는지 알게 된 것도 소중한 경험이다. 요즘 젊은 관객들에게는 옛 시절을 알아가는 재미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100% 찬성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아쉬운 점은 없나.

"최태웅이 점점 시대에 물들며 타락해가는 과정이 편집과정에서 몽땅 날라간 것이 제일 아쉽다. 감독님이 영화의 빠른 속도감을 위해 많이 버린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많이 배웠다. 평소 순발력이 약한 편인데 당일 쪽 대본에 의지해, 앞뒤 상황을 순간적으로 파악해 당일 촬영에 몰입하는 미덕을 배웠다. 무엇보다 감독님이 '춘향뎐'에 이어 2번이나 나를 찾아준 것이 고맙다."

하얀 피부와 선한 눈매의 그에게 최태웅은 이미 영화 속 건달일 뿐이었다. '하류인생'을 계기로 부모님의 옛 앨범을 다시 찾아 보게 됐다는 조승우. 최태웅이 요즘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뭐냐고 물었다. "태웅을 무조건 욕하지 마세요. 저를 비롯해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어쩌면 태웅일 수 있으니까요. 나도 태웅처럼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적당히 악에 타협하고, 적당히 권력에 빌붙는 그런 하류인생은 아닌지…"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1

■ 감독 임권택·제작자 이태원 "'하류인생'은 1950∼70년대 바로 우리 이야기죠"

하긴 그들도 이제 자신들 이야기를 해도 될 때가 됐다. '취화선'으로 2002년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임권택(68·오른쪽) 감독과, 그의 영원한 동지인 이태원(66·왼쪽) 태흥영화사 사장. 때로는 '장군의 아들'과 '서편제'로 흥행 정상에 올랐고, 때로는 '춘향뎐'과 '취화선'으로 한국적 영화미학을 알리는데 안간힘을 썼던 그들이기에, 이제는 그들만의 속내가 담긴 영화 한 편이 나와도 관객은 너그럽게 봐줄 용의가 있다.

임 감독의 99번째 영화 '하류인생'은 바로 이 두 사람의 얘기다. 신세대 스타 조승우(24)의 액션을 내세우기는 했지만, 결코 액션영화는 아니다. 이승만 정권과 4·19혁명, 5·16쿠데타와 유신시대를 배경으로 삼았지만, 시대고발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하류인생'은 한 사람은 감독을 맡고, 또 한 사람은 제작자를 맡은 두 노장이 1950∼70년대 서울 명동에 스며든 자신들의 체취를 추억하며 요즘 사람들에게 덕담 한마디를 툭 내던지는 영화다. "누구 하류 아닌 놈 있으며 나와 봐!"

1957년에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최태웅(조승우). 건달 기질이 다분했던 그는 자신의 친구를 때린 다른 학교 '짱'을 찾아가 피작살을 낸다. 그러다 그 학교 '범생' 승문(유하준)을 알고 또 그러다 승문의 누이 혜옥(김민선)을 사랑하게 된다. 영화는 이후 명동을 무대로 한 '장군의 아들' 스타일의 무협시대를 거쳐, 영화제작업과 미군 군납업을 차례로 운영해간 태웅의 삶을 좇아간다. 그 삶이란 바로 극중 보란 듯이 잘 사는 의사가 규정했듯,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하류인생'이다.

그러나 이런 주인공의 삶은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태웅의 액션은 리얼하지만 거의 양념 수준에 불과하고, 당시 암울했던 삶에 대한 정교한 비판의식도 찾아볼 수 없다. 4·19 데모장면이나 5·16 탱크 진입 장면도 새로운 역사 재현은 아니다. 등장인물들의 대사 역시 "승문은 내가 미워서 그런 게 아니라, 학교 자존심 때문에 찌른 거예요"라든지 "이런 거는 애인한테나 주는 거야"라는 식으로 신파에 가깝다.

영화는 오히려 임 감독과 이 사장의 속내를 간파하며 보면 재미있다. 극중 여배우가 테러에 가까운 영화사 제작부의 강권에 못이겨 더 이상 '애꾸눈 박'이라는 영화를 못 찍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이 있다. 9편이나 동시 촬영했던 당대 유명 여배우가 버린 이 '애꾸눈 박'은 바로 임 감독의 1970년도 작품. 영화 속에 은근 슬쩍 자신의 영화사적 이야기를 집어넣은 노장의 해학이라고 할까.

이 뿐만이 아니다. 유신 반대데모가 한창이던 명동거리 극장에 내걸린 영화간판은 바로 임 감독의 73년작 '증언'이고, 영화검열에 걸려 만신창이가 된 영화필름을 들고 "당나귀에서 귀 떼고 뭐 떼면 뭐가 남아"라고 울부 짓는 극중 감독은 바로 임권택 자신의 분신이다. 군납업자로 변신해 큰 재산을 모은 태웅의 얘기는, 영화제작업에 진출하기 전 실제로 미군부대 시설물을 지으며 큰 돈을 번 이태원 사장의 에피소드다.

'하류인생'은 결국 이 두 사람이 3류 건달 최태웅을 통해 자신들의 지나온 삶을 이야기한 작품 이다. 건달 혹은 깡패 최태웅을 조금도 미화하지 않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하류인생'으로 규정한 이들의 세계관은 요즘 젊은 감독들은 결코 흉내낼 수 없는 '경지'다. 그러나 이런 이들의 이야기와 회고담이 첨단 액션과 화끈 멜로에 익숙해진 요즘 관객 가슴에까지 파고들지는 미지수다. 기대했던 신중현(64)의 음악이 거의 들리지 않는 점도 아쉽다. 15세관람가. 21일 개봉.

/김관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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