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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전 아이 위탁보호 6년째 이임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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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전 아이 위탁보호 6년째 이임순씨

입력
2004.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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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욱아, 미국간 누나가 사진 보내왔네. 너도 미국에 가면 듬뿍 사랑 받게 될거야."생후 6개월된 승욱이를 이달 말 미국으로 떠나보내는 이임순(46·여)씨는 10일 20평 남짓한 자신의 서울 신정동 연립주택에서 두 손으로 승욱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예정된 작별을 아쉬워했다.

"눈코입이 또렷한 게 정말 잘 생겼어요. 얼마나 잘 웃는지 우리집 복덩이에요." 이씨의 말을 알아듣는 듯 승욱이도 방긋 웃었다.

소방공무원인 남편과 대학생 외동딸을 둔 주부 이씨가 버려진 아이들이 입양될 때까지 자신의 집에서 대신 키워주는 '위탁모' 생활을 한 지도 벌써 6년째. 대부분 생후 5개월 이전의 갓난아이들이 맡겨지며 5∼6개월 안에 해외로 입양이 결정된다. 이씨의 15번째 '자식'이 된 승욱이도 생후 2개월이 되던 지난 1월 대구에서 서울 홀트아동복지회로 넘겨진 뒤 곧장 맡겨졌다.

"1998년 동네 이웃을 통해 버려진 갓난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딱한 마음에 일을 시작했는데 이제는 아이들 없이는 도저히 못살 정도로 이 일이 천직이 됐습니다"

홀트아동복지회에 따르면 입양 되기 전 아이를 길러주는 위탁가정(위탁모)은 전국적으로 500여 군데다. 지난해 복지회를 통해 입양된 아이들은 4,000여명으로 해외 입양이 2,300여명, 국내 입양이 1,600여명에 이른다.

이씨는 여느 위탁모와 달리 일단 아이가 맡겨지면 첫날부터 떠나보내는 그 날까지 꼼꼼히 아이의 성장과정을 사진으로 촬영하고 울음과 웃음소리 등이 담긴 녹음 테이프 등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있다. 양부모에게 입양되더라도 아이의 그간 성장과정을 눈과 귀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씨는 입양아 1명당 촬영한 수백장의 사진을 각 2장씩 현상해 앨범에 나눠 보관한다.

사진책자 1부는 양부모에게 건네주더라도 나머지 하나는 훗날 혹시 나타날지 모를 친부모를 위해 소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씨의 집안 곳곳에는 지금껏 키워온 아이들의 액자 사진과 앨범 및 녹음테이프 등이 가득하다.

"외국인 부모들은 아이의 입양 전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받을 때 가장 고마워해요. 그 외국인 부모들이 이제는 거꾸로 저에게 아이의 최근 사진을 동봉해 편지를 보내옵니다. 그러면 예전 사진과 비교해보며 잠시나마 추억에 젖기도 하지요."

아기를 키우는 보람만큼 해외로 떠나 보낼 때의 아픔도 크다. 정들었던 아이가 떠나면 한 동안 몸이 아프기까지 하다. 그 바람에 병원신세를 진 것도 몇 차례나 되는지 모른다.

"승욱이도 헤어질 시기가 다가온 것을 아는지 벌써부터 정을 떼려고 요즘은 평소에 없던 늦은 밤 잠투정을 부리곤 합니다."

15명의 아이가 모두 친자식이나 다름 없었지만 그중 이씨의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아이는 4년 전 발이 안쪽으로 굽은 외반족 장애를 앓던 생후 10개월 된 지혜다. 지혜는 노르웨이로 떠나가며 울면서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엄…마'라는 말을 더듬거렸다. 그때는 어찌나 가슴이 저리든지 손을 흔들고 나서 뒤돌아 집으로 들어가 몇 시간을 펑펑 울기도 했다.

"내 손을 잠시나마 거쳐간 아이들이 나를 생각해주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겠지요. 그저 어딜 가나 아프지 않고 잘 자랐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부모 마음이 다 그런 것 아닐까요?"

냉장고에 붙은 아이들 사진을 바라보다 이씨는 잠시 허공을 쳐다보며 아이들 생각에 잠겼다. 눈가는 금세 촉촉해졌지만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흘렀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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