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말이 사람은 사람(四覽)이란다. 네 가지를 볼 줄 알아야지 사람이란 말인데. 봄이 가고 겨울이 닥치는 사계절을, 네거리에 우뚝 서서 동서남북 어디로 갈 지를, 나고 병들어 죽는 생로병사를 통찰하고 드라마를 보면 기승전결에 감화 감동할 줄,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볼 줄 알아야 사람이란다. 어느 모로나 사람이 되려면 사람노릇을 해야한다는 얘기일 테다.이쯤에서 어느 떠꺼머리 총각의 일화. 평민 신분에 딴에는 프라이드를 갖고 골라서 간다는 신념인데, 어느 날 양가댁 규수의 화사한 외출을 본거라. 오매불망하던 싸릿골 오왈순의 입술 맛은 오간 데 없고, 곧바로 춘정이 돌아 동네 또래들과 마르고 닳도록 보던 춘화 속 여주인공과 오버래핑되며 장딴지에 힘은 풀리고 하품만 푹푹이라.
상사를 앓다 혼자 하는 말이, 저 절색을 안는다면, 괭이든 도리깨든 펄펄도 날을 테지. 그러고도 근력이 남으니 주체할 길 없을 테지. 닭이야 울든 말든 새벽까지 탄성일 테지. 양손에 침 튀겨 바르고, 으라차차 인터뷰 신청이오. 호강에 배 띄우고 한생 살아봅세다. 면경을 보다 말고 어깨너머 힐끗 보이는 규수의 마스카라, 그 사이로 일순 가혹한 냉기가! "사내로서 6척의 길이가 아니 되니 본때가 나지 않고, 말은 막 배워 사교에 서툴고, 글씨는 괴발개발 소통에 지장 있고, 학문 또한 짧아 수준차 난다. 사람 아니니 내쳐라."
그 사이에 자세히도 봤네. 신진대사 지장 없고, 터진 입이어도 쉴 때는 쉬어주고, 글씨는 대서소에 맡기고, 학문은 내가 하지 않아도 남들이 하는데 왜 나까지 사람이 되라는가? 이 세상에 짐승 하나쯤 애교 아닌가. 싫으면 마소, 한눈 그만 팔고 오왈순한테 갈 테요. 그날 이후로 동네에는 새벽까지 짐승의 울음과 괴성이 끊이질 않았다는, 리얼타임대에 규수는 진흙 벽을 득득 긁었다는.
사람을 보는 일이, 사람이 되는 일이 쉽지가 않아요. 또 사람인데도 잘 보면 사람이 아니에요. 세상이 아닌 게 아니라 동물의 왕국이지 싶어요.
/고선웅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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