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째 한류열풍이다. 영화와 드라마, 가요 등 우리 콘텐츠가 아시아권을 강타하고 있단다. 이 한류의 대열에 만화만 뒷전일 수 있을까. 소리 소문 없이 만화의 한류열풍이 아시아권 너머 유럽, 미국에서 오히려 뜨거워지고 있다.우리만화의 해외진출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지난해 1월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 30주년 기념 주빈국 전시로 한국만화특별전이 개최됐고, 이를 통해 일본식 만화 '망가'(manga)가 아닌 '만화'(manhwa) 브랜드를 알리며 아시아 만화 쌍웅(雙雄)의 이미지를 세계에 심었다.
거기에 미국 샌디에이고 코믹콘과 독일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서는 한국 만화관을 운영했다. 그래서 지난 한해에만 500만 달러가 넘는 로열티 수입을 거둬들였다. 2002년 해외수출액이 70만 달러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7배 이상 늘어난 것이니 만화의 메이저시장인 미국, 유럽에서 한국 만화로 지펴진 한류의 위력이 만만치 않다.
한국만화의 인기를 주도하는 작품은 이명진의 '라그나로크', 김강원의 'INVU', 형민우의 '프리스트'등이 있지만 최근 유럽 서점가를 뜨겁게 달군 '천추'도 빼놓을 수 없다.'천추'는 젊은 만화작가 김병진과 스토리작가 김성재의 데뷔작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활동한 고대 민족의 전쟁시대를 배경으로, 악령의 돌을 품고 태어나 죽지 않는 전쟁 병기로 살아가야 하는 전사 천추의 거친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 판타지 코드를 택하고 있지만 역사와 사람에 대한 녹록치 않은 작가의 시선이 이 작품의 탄탄한 드라마를 유지시켜 주고 있다. 동양적인 분위기 속에서 만나는 슬픈 영웅의 비장한 이야기가 유럽 독자의 공감을 자아내는 듯하다.
4월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만난 유럽의 만화출판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천추'에 대한 현지 반응을 설명하느라 흥이 난 모습이었다.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 베스트셀러 상위에 진입한 '천추'. 재팬 엑스포 등 국제 만화축제 개최측은 '천추'의 작가를 초청하고 싶어했다. 유럽의 만화인들은 '천추'의 애니메이션화에 관심을 쏟고 있다. '천추'의 애니메이션화가 추진된다면 자국의 투자 파트너를 자신들이 주선하고 유럽 배급도 책임지겠다는 것이었다.
'천추'를 기획했던 필자로서도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무엇보다 우리 만화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게 돼 뿌듯하다. 바로 몇 년 전까지 우리사회가 만화를 바라보던 차가운 시선을 기억하면 그 감회가 더욱 남다르다. 편견을 넘어 튼실한 작품을 탄생시키며, 스스로의 토대를 쌓아온 우리 만화! 우리 만화가 지금 해외에서 지피고 있는 한류의 불꽃은 우리만화의 뚝심이 일궈낸 결과이고,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박군/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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