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은 제1회 자동차의 날이다. 우리나라의 누적 자동차 수출이 1,000만대를 돌파한 1999년 5월 12일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 제정된 자동차의 날은 올해 처음으로 공식 행사를 갖는다. 사실 자동차 산업은 전·후방 연관산업효과를 따질 때 명실상부한 국민산업이다. 자동차 수출이 총수출의 12%를 차지하고 있고 국민 8명중 1명은 자동차와 직간접적으로 관련한 일에 종사하고 있다. 한국 경제에서 자동차 산업이 가지는 위상을 생각할 때 자동차의 날이 이제서야 생긴 것은 뒤늦은 감도 없지 않다. 특히 95년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의 견인차가 자동차 산업이었다는 데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후 '1만달러의 늪'에 빠져 9년째 쳇바퀴만 돌고 있다. 일각에선 영원히 1만달러의 늪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마저 제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민소득 2만달러 고지에 도달하는 데 있어서도 자동차 산업의 역할이 핵심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의 선진국이 모두 자동차 강국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도 없다. 자동차 업계는 월드컵 4강의 꿈이 실현됐듯 자동차 4강의 바람도 꿈으로 그치진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제1회 자동차의 날을 맞아 한국 자동차 산업의 어제와 오늘, 앞으로의 비전과 과제 등을 점검하는 시리즈 '자동차 4강을 넘본다'(총5회)를 매주 화요일에 연재한다.
/편집자주
"저길 좀 봐요, 저게 몽땅 일본차들 아니오? 저 차들을 죄다 걷어내고 우리 차, 우리가 개발한 차가 달리게 해야겠는데, 그 일을 정 사장이 맡아 줘야 겠어요."
김재관 전 상공부 중공업차관보가 1973년 9월 광화문 거리를 가리키며 당시 정세영 현대자동차 사장(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에게 한 말이다. 일본 도요타와 미국 GM에서 부품을 받아 조립하던 당시 자동차 산업 수준에서 '고유모델 개발'이라는 그의 정책은 당시에는 '미친 짓'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현대차는 김 전 차관보의 말을 따라 고유 모델 개발에 승부를 걸었고, 75년말 한국 자동차의 첫 고유모델 '포니'를 내놓는 쾌거를 이룩했다.
'포니' 탄생의 의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포니는 우리나라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동차를 생산한 나라 가운데 독자 개발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로 만들었다. 많은 개발도상국이 공업화의 핵심 산업으로 자동차 산업을 육성하고 고유 모델을 개발하려 했지만 세계 자동차 시장을 장악한 선진국의 과점 체제 아래에서 이러한 국산화 과제는 바위에 계란치기처럼 불가능한 것으로 지적됐다. 그러나 포니는 이러한 세계 자동차 업계의 고정관념을 깨버렸고 수출까지 했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 발전사를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과정'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된 우리의 자동차 산업은 지난해 317만7,870대(세계 6위)를 생산하고 이중 181만4,938대(세계 6위)를 수출, 30여년만에 자동차 강국의 대열에 올랐다. 특히 과거에는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수출이 됐으나 지금은 소형, 중형,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부문에서 세계 최고 품질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의 권위 있는 시장조사시관인 J.D.파워가 지난해 11∼12월 신차를 구입한 고객을 대상으로 조사한 2004년 상반기 신차품질평가 브랜드 부문에서 현대차는 102점(점수가 낮을수록 순위가 높은 것임)을 얻어 렉서스(1위, 87점), 캐딜락(2위, 93점), 재규어(3위, 98점) 등에 이어 7위에 올랐다. 이는 도요타(9위, 104점), 벤츠(10위, 106점), 아우디(11위, 109점), BMW(11위, 109점) 보다도 높은 순위이다. 모든 브랜드를 종합한 회사별 평가에서도 현대차(102점)는 렉서스 브랜드를 보유한 도요타(101점)에 이어 혼다와 함께 공동 2위를 차지했다.
내수면에서도 전국 자동차 등록대수가 92년 500만대를 돌파,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열었고 지난해말 1,458만7,333대를 기록, 이제 자동차 등록 1,500만대 시대를 맞았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한국을 자동차 강국이라고 말하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직 한국자동차 산업이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지적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한국 자동차 산업이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 자동차 산업은 만성적인 생산능력 과잉으로 생존을 위한 구조재편과 치열한 경쟁이 지속되고 있다. 전세계 자동차 생산 능력이 2002년 7,900만대에 달한 반면 실제 생산량은 5,400만대로 가동률이 68%에 그쳤다.
이 때문에 세계적 컨설팅회사인 보스턴컨설팅과 프라이스워터하우스 등은 자동차 업계의 인수·합병(M&A)이 활발해져 21세기에는 5∼7개 거대 메이커만 삼아남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한국자동차 산업이 독자 생존의 길을 걷을 수 있을 지, 아니면 글로벌 자동차 기업에 먹히게 될지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자동차 산업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볼 순 없다. 한국자동차 산업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은 우리의 자동차 산업이 글로벌 생존 경쟁에서 실패할 경우 한국 경제도 적지 않는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자동차 무역수지 흑자는 197억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무역수지 흑자인 150억달러를 47억달러나 초과했다. 수출이 내수 침체로 허덕이는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자동차 산업의 실패는 곧 우리 경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GM대우 김종도 상무는 "한국 자동차 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탈락한다는 것은 결국 한국이 글로벌 기업에 부품을 조달하는 공장으로 전락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한국 자동차 산업이 그동안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온 것은 사실이나 우리는 아직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제1회 '자동차의 날'을 앞둔 지금 세계 자동차 시장의 현황과 한국 자동차 산업의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사진으로 보는 한국자동차 100년사/사진제공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기아자동차
1. 1903년 고종황제의 어차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 자동차이다. 고종 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 미국 공사의 협조로 도입된 이 차는 지금까지 알려진 캐딜락이 아니라 포드의 A형 리무진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는 당시 미국에서 고종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선물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땅을 처음으로 달린 자동차는 선교사들이 들여온 차라는 설도 있다.
2. 43년 목탄택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유류 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일본은 휘발유 대신 목탄으로 움직이는 택시를 내놓았다.
3. 55년 시발택시
55년 8월 시발자동차회사는 4기통 시발엔진을 제작하고 같은해 9월 최초의 국산차인 시발택시를 선보였다. 미군이 쓰다가 불하하거나 한국전쟁 중에 버린 지프차와 군용트럭 등을 개조한
이 차가 서울 등 대도시에서 택시로 이용됐다.
4. 62년 새나라 소형차
60년대 한국자동차산업은 일본, 미국, 유럽에서 자동차 주요 부품을 수입, 국내에서 조립 판매했다. 당시 새나라자동차는 연간 2,600대의 소형차 조립 능력이 있었다.
5. 66년 신진 코로나
66년 1월 일본 도요타자동차와 기술제휴로 도요타의 코로나를 조립 생산한 신진자동차 최초의 순정품 승용차로 1,500㏄급 77마력.국산화율은 21%에 그쳤다.
6. 68년 현대 코티나
포드와 기술제휴로 포드의 자회사인 영국 포드가 개발한 코티나를 조립 생산했다. 현대자동차의 처녀작으로 1,600㏄급 75마력을 자랑했다.
7. 70년 아시아 피아트124
67년 김상태씨가 (주)아시아자동차 공장을 인수해 이탈리아 피아트사와 기술제휴로 생산한
1,200㏄급 65마력의 승용차. 코로나, 코티나와 함께 70년대 승용차 3파전을 벌였다.
8. 75년 현대 포니
74년 정부는 '장기자동차공업진흥계획'을 발표했고 업계는 이후 수출을 목표로 한 고유모델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75년 현대는 국산화율 90% 이상의 고유모델 '포니'를 내놓았고 개발 3년만에 1만8,000대를 수출하는 개가를 올렸다.
9. 86년 현대 엑셀
86년 1월 20일 울산부두에서 현대 엑셀이 마침내 한국자동차업계의 오랜 숙원이던 미국 시장을 향해 출발했다. 당시 '포춘'은 엑셀이 미국 역사상 가장 빠른 매출 신장률을 기록한 수입품이라고 평가했다.
10. 2004년 기아 슬로바키아 공장 기공식
기아차는 2004년 4월 슬로바키아 질리나에서 동유럽 공장 기공식을 가졌다. 기아차는 지난해 유럽에서 가장 높은 판매 신장률을 기록한 수입차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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