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이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전막 초연(8∼1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하고 있다. 무대 규모가 크고 어려운 역할이 많아 항상 부와 실력을 과시하는 기준이 되었던 이 작품은, 짧지 않은 역사의 국립발레단이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할 레퍼토리다. 차이코프스키 음악과 프티파 안무로 1890년 러시아에서 초연되었고, 여유로운 귀족들이 등장해서 호화로움의 절정과 정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고전발레의 전형이다.국립발레단은 이번에 누레예프 버전을 선택, 키로프 버전을 국내 초연한 유니버설발레단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누레예프 버전은 프티파 원작을 뼈대로 했지만 극적인 설명보다는 춤의 향연에 중점을 두었다. 요정들이 한명씩 차례로 춤추는 대신 화려한 요정 군무가 등장했고, 데지레 왕자와 오로라 공주의 독무를 크게 강화했다. 카라보스 역을 여자가 맡았고, 여섯 요정과 별개로 등장하는 라일락 요정이 마임만으로 극을 진행시켰으며, 늑대와 소녀의 2인무 대신 약식 그랑 파드되(남녀 주인공의 길고 화려한 2인무)가 포함된 5인무로 희극적 분위기를 최소화하고 형식미를 강조했다. 또 루이 14세 시절의 프랑스 궁정 사교춤인 바로크 댄스를 가미해 귀족문화를 더욱 섬세하게 재현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이 성공적이었다고는 말하기는 어렵다. 안무자, 지휘자, 무대, 의상 디자이너를 외국에서 초청한 공연치고는 풍요로움이 없었다. 개막공연에서는 무엇보다도 귀족다운 외모를 무시한 배역의 문제가 상당히 심각했다. 한국인이 발레를 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고전 중의 고전을 너무 만만하게 대하지 않았는가 싶다. 왕보다는 시종장이 귀족 같았고, 유명한 파랑새 2인무나 로즈 아다지오에 비해 고양이 2인무가 오히려 안정감을 주었다. 섬세한 발끝 처리는 항상 부족한 부분이지만 이번에는 팔의 고전적인 포즈까지도 문제가 되었다.
전반부의 만족스런 장면은 홍정민의 요정 춤, 노보연의 라일락 마임 정도. 다행히 3막에 접어들면서 결혼식 그랑 파드되로 중심을 잡았다. 주인공 김주원과 이원철은 초청 안무자의 손길이 느껴지는 다듬어진 품격을 보여 모든 섭섭함을 몰아냈다. 누레예프가 직접 연기했던 지독하게 복잡한 스텝을 열정적으로 재연한 이원철의 노력이 돋보였고, 곧고 우아한 자태를 보여준 김주원은 이번에도 역시 최고의 공로자였다.
/문애령·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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