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1월말과 12월초에 걸쳐 여야 4당 대표들을 따로따로 초청한 적이 있다. 나의 KBS 운영방침과 인간화 민주화 세계화를 위한 방송철학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협조를 구했다. 당시 집권 민정당 대표는 박준규(朴浚圭)씨였고 민주당은 김영삼(金泳三), 신민주공화당은 김종필(金鍾泌), 평민당은 김대중(金大中)씨가 총재였다.먼저 박 대표를 코리아나호텔 3층 일식당으로 초대했다. 박 대표는 내가 흥사단 이사장 시절 김재순(金在淳) 정원식(鄭元植)씨 등과 함께 '3·1성서연구회'모임을 할 적에 더러 참석해서 아는 사이였다. 당 간부 넷을 대동하고 와서 두어 시간 환담했는데 흔쾌히 공감과 지지를 해주었다. 다음으로 김영삼 총재를 63빌딩 일식집에서 만났다. 그의 왼팔로 불리던 김동영(金東英)씨를 동반했다. 그분 특유의 친화력을 보이면서 서로 협력을 잘 하자고 하여 좋은 분위기에서 끝났다. 김종필 총재는 마포가든호텔 한식집에서 만났는데, 최각규(崔珏圭)씨와 함께 나왔다. 한적 사무총장시절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고, '서울의 봄'당시 청구동 자택으로 나를 불러, 두어 번 방문한 적도 있어 꽤 친근하게 여러 얘기를 나누며 격려와 조언을 받았다.
세 분은 낮 시간이 좋다고 해 오찬을 했는데, 김대중 총재는 저녁시간이 좋겠다고 하여 63빌딩 일식집에서 저녁때 만났다. 김 총재는 김봉호(金琫鎬)씨와 함께 나왔고, 나는 앞의 세 번 회동 때처럼 박성범(朴成範) 보도본부장을 대동했다. 저녁이어서 박 본부장은 1시간쯤 있다 9시 뉴스를 하러 자리를 떴고, 김씨도 전화를 하느라고 자주 들락거리는 바람에 김 총재와 둘이서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김 총재와도 흥사단 시절부터 인연이 있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했다. 그러다 김 총재가 기관원에 의해 납치되어 현해탄에서 수장될 뻔한 사건에 대해 물어보았다. 김 총재는 마취를 당해 의식을 잃고 깨어나 보니 배의 기관 소리가 들리고 수족이 다 묶여 있어 '이제 죽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간절히 기도를 했더니 하얀 옷을 입은 이가 나타나 그 옷자락을 붙잡고 '살려주면 주의 뜻대로 신명을 바치겠다'고 애원을 하자 비행기 소리가 나고 배의 기관의 발동이 다시 걸리더니 항해를 해서 살아나게 됐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김 총재는 하늘이 보호하는 분이고 큰 사명이 있는 분이니 원한도 씻고 노태우(盧泰愚) 대통령과도 화해해 나라 일을 해주십시오"라고 했다. 그러자 김 총재도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하려고 한다. 두어 번 노 대통령을 만나 그렇게 하자고 서로 약속을 했는데 얼마 지나면 대통령 측근들이 '김 대중은 믿지 말라'고 하는지 자꾸 변화가 와서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노 대통령은 지금 민주화를 하려고 하지 않는가. 이 정권에서는 잘 협력하고 앞날을 기대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라고 충언을 했고 김 총재도 "참 좋은 뜻의 얘기를 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이틀 뒤 안기부 차장 안응모(安應模)씨로부터 만나자고 전화가 와 다음날 하얏트 호텔 지하식당에서 조찬을 했다. 그의 첫 마디가 "왜 김대중씨 같은 사람을 만나면서 나쁜 소문을 냅니까"하는 것이었다. 내가 4당 대표를 다 만난 경과를 설명하자 그는 "아니, 다른 사람들은 들러리 세운 것 아닙니까. 왜 다른 사람들은 낮에 만나고 김대중씨는 밤에 단둘이 만났습니까 "했다. 나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또 "내가 정당 대표들을 만나는 것이 정부에도 도움이 된다. 정부와 잘 협조해 국정을 운영해달라고 했다. 정부에서 고마워해야 하는데 오히려 나를 의심하느냐"고 했다. 안 차장은 "서동권(徐東權) 부장이나 나는 서 사장을 믿고 존중합니다. 그런데 정보가 자꾸 좋지않게 들어오니 조심하십시오"했다. 일종의 경고적 충고였다.
그 때 KBS에는 정치인이나 사회 인사를 초청하는 행사가 많았는데 정계지도자를 초청하면 여당 인사는 별로 안 오고 김대중, 김종필씨 등 야당 인사들이 많이 왔다. 이런 것이 나와 김대중씨가 가깝다고 오해하게 되는 배경이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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