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팡파르를 울리며 약속했던 상생의 정치가 김혁규 전 경남지사 총리기용설로 벌써 파탄의 위기에 놓여있다. 한심한 일이다. 특히 이를 둘러싼 노무현 정부와 한나라당 간 힘겨루기는 한국정치의 패러다임이 낡은 정치로부터 한 발자국도 나아간 것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과거 한국정치는 두 공식만 알면 거의 다 설명이 됐다. 하나는 '싸우면서 닮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이중잣대이다. 예를 들어, 여당의 야당의원 빼내기를 비판하던 야당도 여당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야당의원 빼내기를 서슴지 않았다. 싸우면서 닮은 것이다. 게다가 의원 빼내기도 남이 하면 민의를 왜곡하는 헌정파괴 행위지만 내가 하면 개혁을 위한 필요악이라는 식으로 정당화했다. 후임총리에 대한 정치권의 갈등은 두 공식이 아직도 타당성을 잃지 않고 한국정치를 관통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펄쩍 뛰고 있는 한나라당이 그러하다. 한나라당은 김 전 지사가 한나라당의 간판아래 경남지사를 지낸 것과 관련해 배신자와 철새 정치인을 중용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분노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들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수많은 정치인들을, 그것도 억대의 이적료까지 줘가면서 영입해 한나라당을 철새둥지로 만든 바 있다. 철새영입도 내가 하면 민주투쟁이고, 남이 하면 배신자 우대정책인가?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 전 지사를 총리로 지명할 경우, 그에 대한 자질과 도덕성을 엄격하게 검증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것도 희극이다. 노 대통령이 정확히 지적했듯이, 한나라당이 스스로 세 번이나 공천했던 사람이 당적을 바꿨다고 갑자기 하자가 생겼단 말인가. 한마디로 한나라당은 김 전 지사의 총리지명에 시비를 걸고 나설 자격이 없다.
김 전 지사의 총리기용이 문제가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한민국에 노무현 정부와 한나라당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할 말이 없지만 일반 국민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누가 뭐라 해도 김 전 지사는 철새정치인이고 철새정치인을 총리로 중용하는 오만한 정치를 하라고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에 표를 몰아 준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그를 총리로 지명하는 것은 한나라당처럼 철새정치인에게 이적료를 지불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특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그럴 수 없다. 대선과정에서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김민석 전 의원으로 상징되는 철새정치인들의 이탈로 가장 고통을 받았던 당사자, 그리고 김 전 의원에게 철새라는 뜻의 '김민새'라는 이름까지 붙여 철새정치를 강하게 비판했던 주인공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당사자들이 '김혁새 총리'와 '김혁새 내각'이라는 조롱을 자초해서야 되겠는가.
주목할 것은 김혁규 총리설로 정치권이 시끄러운 가운데 지난 대선 막판에 한나라당으로부터 거액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이인제 의원이 검찰의 구인조치에 저항해 추한 경지를 넘어서 코미디 같은 지구당 칩거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의원은 경선불복종과 철새정치를 통해 정권교체와 김대중 정부의 출범에 기여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될 성 싶은 나무 떡잎 보면 안다'고 경선불복종을 하는 순간, 그의 추한 결말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김 전 지사의 중용 역시 지역구도 타파를 명분으로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원칙을 버리고 철새정치인의 중용과 같은 편법으로 문제를 쉽게 해결하려 하는 경우 이인제의 비극을 반복할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대한민국에 노무현 정부와 한나라당만 사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은 노 대통령이 탄핵의 시련을 통해 얼마나 성숙해졌고 변화했는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탄핵까지 자초했던 특유의 오기정치가 아니라면 총리감이 어찌 철새정치인뿐이겠는가?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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