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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기획-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딸아, 네가 있어 엄마의 자리 지켰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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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기획-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딸아, 네가 있어 엄마의 자리 지켰단다

입력
2004.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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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한창 발랄하고 꿈 많은 고등학교 시절의 상처를 감싸안은 채 대학 졸업반으로 성장한 너를 바라보면 눈물로 얼룩진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오빠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슬픔과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오직 컴퓨터에만 매달리던 네가, 컴퓨터 경시대회 홈페이지 부문에 참가하기 위해 열심히 홈페이지를 만들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상도 많이 받았지. 대학 전공으로 게임과를 택하게 된 것도 오빠의 보이지 않는 도움이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앞으로도 잘 될 거라는 확신을 갖기 바란다.

엄마는 언젠가 너와 함께 꼭 다시 한 번 가고 싶은 곳이 있어. 순천대에서 입상한 작품 설명을 하고 나서 기차역을 향해 걸어가다가 순천교 난간 아래 흐르는 물을 보았지. 얼마나 깨끗하던지 물 속 모래가 훤히 보였어. 잠시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 땐 엄마가 살아 있다는 것이 너무나 고통이었다. 극심한 고통에 세월이 하루 빨리 지나 저 세상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단다.

그 시절 너는 엄마에게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심어주었다. 커다란 상처와 고통스러움을 지혜롭게 견디고 있는 너를 보며 엄마의 자리를 꼭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가정의 달 오월이 오면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오빠의 빈 자리가 너에게는 너무도 커 보인다.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하며 일찍 철이 들었던 오빠였기에 네가 좋아했던 건 당연했다. 엄마는 그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기에 마음이 너무도 아프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빠부터 찾았지. 오빠는 교대를 특차 합격해 놓고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마음 속엔 항상 평소 모습 그대로 살아 있었지. 기억 나니? 네가 울면서 하던 말. "오빠는 바보야! 공부만 하다 세상 떠난 오빠는 정말 바보야." 엄마가 모자란 탓에 오빠를 지켜주지 못하고 허망하게 그렇게 보냈으니 이 못난 엄마를 용서하거라.

엄마는 이제야 비로소 세상이 보이고 나를 찾은 것 같다. 살아 숨쉬며 당당하고 용기 있게 나의 위치를 확실하게 지키련다. 컴퓨터로 글도 쓰면서 아픔을 이겨내고 사랑으로 내면을 다시 채운 것은 네가 엄마에게 보여준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내 딸아, 너무나 고맙다. 나의 소중한 딸 너의 앞날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행복한 날들로만 가득 채워지기를 기도한다. 이제 우리 손잡고 푸른 오월을 힘차게 걷자.

/2000hanke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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