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선(金基善·60)씨는 사실 3년 전 영풍신용금고 사장을 퇴임하고 택시기사로 전업했을 때 이미 꽤 화제가 됐던 사람이다. 체면 사회의 상례(常例)를 깬 변신이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얼마나 하랴" 는 냉소적인 반응도 없지는 않았다. "한번 해보라 그래. 대우 받는데 익숙해 있던 사람이 남을 대접해야 하는 서비스업을…." "괜히 튀어서 국회의원이라도 나가보려는 것 아냐?" 그렇지만 김씨는 여전히 서울시내를 휘저으며 택시를 몰고 다닌다. 그것도 아주 신나는 표정으로. "올해 10월 말이면 회사택시를 몬 지 꼭 3년이 됩니다. 비로소 개인택시를 가질 자격이 생기는 거지요". 오랫동안 애써 온 끝에 이제 큰 계약을 앞에 둔 사업가 마냥 잔뜩 기대에 차있다. 그는 택시를 몰면서 지금껏 몰랐던 진짜 인생의 맛을 매일매일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늙어 기운이 다 없어질 때까지" 운전대를 잡을 생각이다. 그가 뒤늦게 낮은 곳에서 새롭게 터득해가는 삶의 행복을 들어 보았다.
1만5,000원 짜리 구두에 회사에서 지급한 남방셔츠, 만원짜리 바지를 자랑스럽게 설명하는 김기선씨에게서 왕년 금융업계 CEO의 모습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전에는 수십만원씩 하는 발리구두도 신었지만 그게 살아가는 데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수입이 10분의 1도 안되게 줄긴 했지만 사실 바빠서 돈 쓸 일도 없어요. 애들도 다 커서 100만원만 벌어도 그런대로 살겠습디다." 아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언론에 소개되는 걸 꺼린다는 그가 인터뷰에 응한 건 이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체면 따져서 일 못하는 이들은 용기도 없고 삶의 진정한 행복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눈 높이를 낮추면 또 다른 세계가 보이는 법이지요. 아, 위에서 보면 머리통 밖에 안 보이지만, 아래에서 보면 미니스커트 아래 시원한 다리도 보이지 않습니까." 그의 거침없는 말투와 웃음이 더 시원했다.
얼마 전 택시에 탄 중년 여성이 반색을 하더란다. "어머, 김 과장님!" 20년 전 중앙투자금융에 있을 때 부하 여직원이었다. "그 때 나이 들면 택시운전 할 거라고 하시더니…. 정말로 이 일을 하시네요." '그랬던가? 내가 택시운전에 '뜻'을 둔 게 그렇게 오래 됐나?' 김기선씨는 오랫동안 금융인, 더욱이 성공한 금융인으로 살았지만 택시운전 또한 그 세월만큼이나 오래 생각해왔던 일이었다. "젊었을 때부터 곰곰 생각해보니까 나이 들어서도 몸이 허락하는 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택시운전이더라구요. 자영업자나 변호사도 늙으면 뒷방으로 물러앉고, 의사도 손 떨려서 수술 못 한다면서요?" (딴은 그렇기도 하다)
김씨는 은행이 최고의 직장이던 60년대에 서울은행에 입사했고, 단자회사의 인기가 한창일 때 중앙투자금융과 고려투자금융의 간부를 맡았으며, 증권사들이 전성기를 누릴 무렵에는 동아증권(현 세종증권)에서 부사장까지 지냈다. 능력을 인정 받아 영풍상호신용금고 사장으로 스카우트된 뒤에는 IMF 사태 와중에서도 3년 임기를 세 차례나 연임했다. 주주들의 전폭적인 신뢰가 있었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그런 그가 마지막 임기만료를 1년 앞두고 멀쩡한 자리를 홀연히 떨치고 나왔다. 그 이유가 택시운전을 하기 위해서 였다니.
"60살부턴 정말 자유롭게 내 일을 하며 살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개인택시를 가지려면 법인택시 근무 3년 경력이 필요하더라구요. 그래서 계산해보고는 사표를 낸 겁니다. 제가 올해 딱 예순입니다. 정확히 계획대로 돼가는 거지요." 아내(56·교회 전도사)는 워낙 오래 전부터 남편의 장래 계획에 '세뇌'돼 왔던 터라 진짜 '저지르는구나'하고 놀라긴 했지만 크게 반대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당혹해 하던 두 아들도 곧 아버지의 '용기'를 오히려 성원해 주었다. (장남은 올 여름 대한항공 조종사로 옮기는 공군 파일럿이고, 둘째는 안정된 기업의 직원으로 각기 탄탄하게 자기 길들을 가고있다. 가정에 별다른 걱정이 없고 당장 생계가 급하지 않은 형편도 그가 쉽게 결심을 행동에 옮길 수 있었던 요인이었을 것이다) 혹 나태해질까 봐 사촌형님이 하는 택시회사를 피해 서울 서초동 집(최근에 경기 죽전의 아파트로 옮겼다) 바로 앞에 있는 생판 모르는 택시회사를 찾아가 취직했다. 그러나 노상 승용차 뒷좌석에만 앉아 다니던 그에게 택시 운전이 처음부터 만만했을 턱이 없다. "일을 시작한 지 한달 만에 몸무게가 5㎏이나 줄었어요. 수동변속기로 운전하다 보니 왼쪽 발목이 아파서 3개월 정도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고요." 그래도 지금껏 월 26일의 규정근무를 한번도 거른 적이 없다. 그 업계 용어로 하자면 '만근(滿勤)'이다. "2년 반을 꼬박 만근했다는 거 그거 대단한 기록입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좋은 것일까. 김씨의 일과는 새벽 4시부터 시작된다. 아내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서둘러 차고지로 출근해서는 차를 받아 거리로 나서는 게 5시. 이 때부터 오후 5시까지 12시간 핸들을 잡는다. 운전이 끝난다고 해서 곧바로 퇴근하는 건 아니다. 사납금(하루 8만원인데 요즘은 이것 채우기도 힘들다)을 입금시키고 일지를 쓰고 차를 깨끗이 닦고 나면 속옷까지 흠뻑 땀으로 젖는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서 자칫 떨어질 체력을 헬스클럽에서 좀 추스리고 나서 집에 들어가면 대충 9시30분. 늦은 저녁을 먹고 나서는 아내와 별로 얘기할 틈도 없이 곧바로 잠에 곯아 떨어진다.
"우선 노동 그 자체가 주는 순수한 즐거움이 큽니다. 노동의 맛, 캬!… 그거 기가 막힙니다." 그의 입에서 맛난 음식을 입에 넣었을 때와 같은 감탄사가 절로 튀어 나온다. "예전 사우나에서 억지로 빼던 땀하고 일하면서 흘리는 땀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힘들게 일 끝내고 샤워를 하면 기분이 그야말로 날아갈 듯 하지요. 또 회사 다닐 때는 퇴근을 해도 늘 이어지는 골치 아픈 일이 머리 속에 남아있었지만 노동은 매일매일이 완결입니다. 그러니 내일을 생각할 것 없이 홀가분하게 휴식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지요."
그러나 정작 더 좋은 건 숱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순간순간 다가드는 생생한 생활의 느낌이다. "손님들은 별별 얘기를 다 합니다. 그런데 그게 평소 입밖에 내기 힘들었던 마음 속 진실들이거든요. 다시 볼 사람이 아니니까 툭 털어놓고 한풀이를 하는 겁니다. 제 경우를 봐도 차장, 부장 때까지는 그래도 직원들과 깊은 얘기까지 하고 지냈는데 임원이 되면서부터는 골치 아픈 업무 얘기만 들고 오더라구요." 그래서 그는 손님이 할 얘기가 남았으면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차를 세워놓고 들어주며 인생상담도 한다. 한번은 강남 수서에서 70대 할머니가 씩씩 거리며 타더란다. 이혼법정에 가겠다고 서류준비에 필요할 듯한 돈 10만원을 꾸어서는 무작정 택시를 잡았다고 했다. "한참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할머니 감정이 좀 가라앉는지 마음을 바꾸십디다."
(차에 남겨지는 사연이야 그가 태운 손님 숫자만큼 될 터이니 그걸 다 전할 도리는 없다, 다만 삶을 불평하는 손님들에게 자주 해주었을 그의 비유가 절묘해 소개한다.
"우리가 밥 먹다가 돌이 한 3개만 씹히면 '이거 돌밥이잖아'하고 짜증내잖아요. 하지만 쌀하고 비교해 그게 어디 돌밥입니까. 인생의 어려움이나 불평도 결국은 그런 거지요.")
물론 마음 상하게 하는 손님들도 있지만 그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간혹 사정이 생긴 동료 대신 밤에 일 할 때면 술 취해 행패부리는 사람도 많지요. 그러면 '사는 게 얼마나 힘들면 저러랴'하고 그냥 넘깁니다. 딱이 저한테 감정이 있어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 더구나 제가 평생 해온 일이 금융 서비스업 아닙니까. 웬만한 손님 다루는 건 문제없습니다."
그가 행복감을 느끼는 시간은 또 있다. 보통 오후 1시쯤 들르게 되는 시내 기사식당에서의 점심 시간이다. 함께 택시운전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 같이 식사를 한다.
역시 D증권 상무와 S식품 부사장 등 화려한 이력을 지닌 친구들이다. (원래는 모두 넷이 의기투합했는데 모 상호신용금고 전무를 하던 친구는 부인이 끝까지 반대해 아쉽게 뜻을 접었다) "된장찌개, 제육볶음 따위를 나눠 먹으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들을 합니다. 밥이 꿀맛같이 달아서 한 톨 남기는 법이 없어요."
그는 경력이 경력인 만큼 여전히 모모 클럽 등 각종 사회 명사들의 모임 회원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곳에서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 데서의 대화란 게 대개 타워팰리스가 어쩌니, 골프회원권이 어떠니, 아니면 정치인 누구누구와 만나 어쨌다느니 하는 공허한 것들이지요. 은근히 유세들을 하는 겁니다. 서로에 대한 인간적 배려란 것도 없고…. 택시를 해보니까 오히려 열심히 사는 서민들의 마음이 더 넉넉합디다. 복잡한 행선지를 미안해 하거나 거스름돈을 배려해주는 손님도 그런 분들이지요."
이준희/편집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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