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자기 모든 방송채널의 정규 프로그램이 중단되더니 '긴급뉴스'란 자막과 함께 침울하고 긴장된 표정의 대통령의 화면에 나타난다."여러분, 이런 소식을 전하게 돼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얼마 전 취미로 밤하늘을 관측하던 한 대학생이 지름 약 5㎞의 혜성을 발견했습니다. 이 혜성은 지금 중국 북쪽 지역을 향해 다가오고 있으며 약 1년 후면 지구와 충돌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요하지 마십시오. 전세계 과학자들은 혜성 충돌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 중에 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의 대통령 담화문 발표가 끝나고 지구인들은 살아 남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브루스 윌리스와 벤 에플렉 등 정예 멤버로 구성된 팀을 혜성에 파견, 핵폭탄으로 혜성을 잘게 부수고 궤도를 바꾸게 해 지구를 구하는 것이 핵심 계획.
# 영화 같은, 아니 실제 영화로 수없이 제작됐던 혜성 충돌 시나리오는 희박하지는 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지도 않은 악몽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혜성을 발견하더라도 현재 인류가 손쓸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이다. 5월 밤하늘에서 리니어와 니트 등 두 개의 혜성을 관측할 수 있는 드문 기회가 열린다. 더욱 흥미로운 관측을 위해 혜성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보자.
혜성은 '지저분한 눈 덩어리'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큰 별은 수성부터 명왕성까지 아홉 개. 그러나 그 사이사이에는 달과 같은 위성을 포함해 수 많은 소행성과 혜성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
소행성은 암석이나 탄소, 혹은 금속으로 이뤄진 작은 별을 뜻하며 화성과 목성 사이에 대부분 위치한다. 행성과 비슷한 궤도를 지닌 소행성과 달리 긴 타원형 꼴로 태양 주변을 도는 암석, 먼지, 가스 덩어리를 혜성이라고 한다. 혜성 궤도는 소행성보다 훨씬 크고 각도도 가지각색이다. 태양계 외곽에 많이 존재하는데 대략 880개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혜성은 대부분 태양열이 미치지 못하는 거리에 있어 메탄 암모니아 이산화탄소 시안화수소 등 태양계 생성 초기 물질들이 얼음 덩어리로 뭉쳐져 있는데 먼지가 많이 섞여 종종 '지저분한 눈 덩어리(Dirty Snowball)'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혜성 속도, 콩코드 비행기 100배 넘어
많은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들이 소행성보다는 혜성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혜성 충돌이 훨씬 위협적일 뿐 아니라 예측이 어렵기 때문이다.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할 때 대기 진입 속도는 초속 약 15∼30㎞. 이에 비해 혜성의 속도는 75㎞에 달한다. 콩코드 비행기의 속도가 초속 0.6㎞인 점을 감안해보면 혜성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상상할 수 있다.
속도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혜성의 예측 불가성이다. 혜성은 태양계 전체에 분포돼 있어 이를 찾아내려면 광활한 천체를 끊임 없이 관측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혜성은 태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빛을 거의 내지 않고 숨어있다가 목성 정도 다가와서야 정체를 드러낸다. 이 위치에서 혜성이 지구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1년 정도. 충돌회피 대책을 세우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기간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혜성을 연구한 결과 앞으로 100년까지는 충돌이 없을 것이라는 잠정 결론이 내려졌지만 무서운 속도로 우리를 향해 떨어지는 혜성이 언제 어디서 발견될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혜성 파괴 레이저 개발 100년 걸려
엄청난 재해가 예상되는 혜성 충돌에 대비해 인류가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1999년 2월 발사한 혜성 탐사선 '스타더스트'는 5년간의 우주여행 끝에 '빌트2'라는 혜성에 접근, 지난달 72장의 사진을 지구로 보내왔다. 미국은 이와 함께 오는 12월 '템플 1'이라는 혜성에 7층 빌딩만한 구멍을 내 관측과 연구를 병행하는 탐사선 '딥임팩트'를 발사할 계획이다.
유럽우주국(ESA)의 우주탐사 사상 가장 큰 돈(12억5,000만 달러)을 들인 혜성탐사선 '로제타'도 3월 2일 10년간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로제타는 2014년 얼음으로 뒤덮인 '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 표면에 착륙선을 내려놓을 예정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이 추진중인 '남반구 네트워크'는 혜성 관측의 사각지대라고 불리는 지구 남반구에 망원경을 설치하는 프로그램.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미 설치된 망원경에 이어 6월말쯤 호주에, 내년 말쯤 칠레에 천문 망원경을 설치해 남반구의 밤하늘을 24시간 살피게 된다.
지구를 강타할 혜성이 발견됐을 때 현재로서 이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법으로 고출력 레이저가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혜성의 궤도를 바꿀 정도로 높은 출력을 가진 레이저를 만들려면 100년 이상 걸린다"고 말한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과연 신은 누구 손을 들어줄까.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도움말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천문그룹 선임연구원
■ 충돌이후 시나리오
천방지축의 얼음 덩어리가 지구와 부딪혔을 때, 지구는 어떻게 될까. 충돌할 때 타격은 혜성의 무게와 속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과학자들은 지름 10㎞ 이상의 혜성이 지구를 강타하면 인류는 멸종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혜성을 정면으로 맞은 대륙은 물론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만 그 후유증 역시 상상을 초월한다. 초속 75㎞의 혜성이 지구 대기를 뚫고들어올 때 발생하는 충격파는 천체 및 주변 대기를 가열해 엄청난 공중폭발을 일으킨다. 거대한 폭발은 무서운 속도의 바람으로 인한 파편을 유발해 넓은 지역을 초토화시킨다.
지구 표면의 3분의 2를 덮는 바다로 혜성이 떨어진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는 바다 깊숙이 '크레이터(crater·분화구 모양의 구멍)'를 만들어내는데 바닷물이 이 구멍을 채우면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졌을 때와 같은 출렁임, '쑤나미(tsunami)'가 일어난다. 해저 지진과 해저 산사태까지 동반하는 이 해일은 비행기와 비슷한 속도로 육지를 휩쓴다.
1960년 칠레에서 발생한 지진이 일으킨 쑤나미는 1만7,000㎞ 떨어진 일본 해안까지 밀려와 최소 114명의 사망자를 낸 것으로 보고됐다.
또한 쑤나미에 의해 어마어마한 양의 바닷물이 대기에 뿌려질 경우 공기 중의 먼지가 응결핵 역할을 해 바닷물이 공중에서 얼음으로 변하는 '핵겨울'이 온다는 무시무시한 예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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