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유명 여배우가 영화촬영 도중 알레르기로 응급실로 실려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과연 알레르기 같은 질환으로도 그런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실제로 알레르기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질병이다. 회사원 이모(27·여)씨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어 지금까지 봄나들이 한번 제대로 간 적이 없다. 특히 꽃가루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같은 때에는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나오는 콧물 때문에 체면이 말이 아니다. 꽃이 가득 피어 있는 한강 강변만 봐도 코가 간질간질해지는 것 같고, 눈처럼 날리는 꽃가루 뭉치만 보면 피해 다니기 바쁘다. 이렇게 꽃가루에 호되기 당하다 보니, 봄이면 의기소침해지고 의욕도 잃게 된다. 이씨의 어머니, 남동생도 마찬가지다. 이 집안에서는 꽃가루가 그야말로 가문의 원수인 셈이다.
알레르기 주범 꽃가루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알레르겐)로는 집 먼지 진드기, 동물 털, 바퀴벌레, 꽃가루, 곰팡이, 곤충, 약물, 음식물 등이 있다. 원래 알레르기는 집 먼지에 의해 가장 많이 발생하는데 요즘 같은 봄철에는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가 크게 증가한다.
나무, 화초, 잡초 등 모든 식물이 꽃가루 알레르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흔히 꽃가루 알레르기라고 하면 벚꽃, 개나리, 장미, 목련 같은 향기 좋은 꽃이 원인일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 이런 꽃들은 벌이나 나비가 꽃가루를 날라주는 충매화(蟲媒花)이기 때문에 잘 날리지 않는다.
알레르기의 원인이 되는 것은 꽃가루가 바람에 날리는 풍매화(風媒花). 오리나무, 소나무, 느릅나무, 자작나무, 단풍나무, 버드나무, 참나무 등이 바로 대표적인 풍매화다. 봄철에 공기 중에 흩날리는 사시나무, 플라타너스 등의 씨털은 실제 꽃가루가 아닐 뿐만 아니라 알레르기성 질환과도 거의 무관하다.
감기로 오인되는 알레르기
알레르기 증상이 감기와 비슷해 알레르기 원인 물질에 닿으면 눈이 가렵거나 붓고 충혈되며 콧물, 재채기, 코 막힘, 귀 가려움 등의 증상이 생기기도 한다. 기관지로 들어오면 재채기 콧물 등이 심해진다. 천식이 있으면 숨쉬기도 어려워 졸도하거나 심하면 숨지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전신에 두드러기가 생기는가 하면 원래 있는 아토피성 피부염도 악화한다. 눈에는 눈물과 결막염도 생긴다. 꽃가루가 몸 속에 들어가면 면역세포가 과잉반응을 일으켜 가려움과 염증 등을 유발하는 물질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알레르기 증상은 오전에 특히 심하게 나타난다. 꽃가루는 해가 뜬 직후부터 오전 9시까지 가장 기승을 부리는 탓이다.
보통 꽃가루 알레르기는 20∼40대의 젊은 층에서 많이 발생하지만 최근에는 어린 아이부터 중년층 이후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어린 아이나 노인에게 흔히 나타나는 꽃가루 알레르기는 주로 국화, 과꽃, 데이지, 야생쑥꽃, 야생 흰국화 등의 꽃가루가 주원인이다. 이런 꽃을 직접 만지거나 공기 중에 날아 다니는 꽃가루가 피부에 닿으면 눈 주위, 얼굴, 목, 손, 팔 등 노출 부위의 피부가 벌겋게 변하고 가려워진다.
알레르기는 뭐니뭐니해도 예방이 최선
꽃가루 알레르기성 비염을 치료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원인물질을 피하는 것이다. 대한 소아알레르기 및 호흡기학회(www.pollen.or.kr)에서 제공하는 꽃가루 일기예보를 참고로 하면 된다. 물론 꽃가루가 날리는 수개월 동안 두문불출하며 원인물질을 피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조금만 신경을 쓰면 어느 정도 예방하는 것은 가능하다.
우선 자신이 앓는 알레르기의 원인이 되는 꽃가루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어떤 꽃가루가 원인인지 확인하면 그 꽃이 피는 계절에는 외출을 삼가고 방문을 잘 닫아놓아 꽃가루가 실내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공기정화기도 많은 도움이 된다.
외출할 때에는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 헝겊으로 만들어진 일반 마스크는 꽃가루를 제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꽃가루용 마스크는 미세한 먼지까지 제거할 수 있는 특수 필터(헤파 필터)가 있는 것을 사용해야 한다. 또 외출에서 돌아오면 겨드랑이와 허리, 팔 등 꽃가루가 닿기 쉬운 부위부터 잘 털어낸 다음 몸을 씻는다.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다면 하루에 한 번씩 생리식염수를 코에 뿌려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단 죽염이나 아주 진한 소금물로 씻으면 코에 자극을 주어 오히려 해로울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
일단 알레르기 질환이 생기면 증세를 완화시키는 약제를 사용해야 한다. 이런 약제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가려움증을 가라앉히는 항히스타민제이다. 항히스타민제는 가려움증, 재채기, 과다한 콧물 등의 증상을 완화시킨다. 그 밖에 바르거나 뿌리는 항알레르기 약제인 클로몰린제, 스테로이드제 등이 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도움말=삼성서울병원 알레르기센터 이상일 교수,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소아과 이혜란 하나이비인후과 이상덕 원장>도움말=삼성서울병원>
■외출전 잠깐!/꽃가루 예보 확인했나요
'꽃가루 심한 날을 알려줍니다.'
대한 소아알레르기 및 호흡기학회(회장 이하백 한양대 의대 교수)는 서울과 경기, 강원, 천안, 대구, 광주, 부산, 제주 등 전국 8개 지역을 대상으로 '꽃가루 예보제'를 시행하고 있다.
꽃가루 예보제는 전국 8개 지역 병원 옥상에 설치된 채집장비에 담긴 정보를 이 학회 산하 꽃가루위원회에서 매주 분석, 홈페이지(www.pollen.or.kr)를 통해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알레르기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꽃가루가 발견되면 이 꽃가루가 다음 한 주 동안 어느 정도 날릴 것이며 알레르기 환자에게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인가 등을 분석해 예보한다.
학회는 시스템을 위해 1995년부터 알레르기와 호흡기질환 분야의 전문의들로 '꽃가루 역학조사팀'을 발족해 운영하고 있다.
이 회장은 "꽃가루 정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시행하는 예보제로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들이 미리 1주일간 외출계획을 짜는 등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알레르기 비염 예방법
1.실내습도를 40~50%로 조절해 콧속이 건조해 지는 것을 막는다.
2.하루 한번 이상 생리식염수로 코를 세척한다.
3.죽염이나 짠 맛이 진한 소금물로 세척하는 것은 피한다.
4.황사가 있을 때 외출을 삼가고, 외출시 마스크나 안경을 착용한다.
5.외출에서 돌아왔을 때, 얼굴과 손을 깨끗이 닦아주고 입안을 양치한다.
6.바람이 강한 맑은 날에는 창문을 열지 않는다. 이때는 침구류도 밖에 널어 말리지 않는다.
7.에어컨을 이용해 실내 환기를 하고, 공기정화기를 사용하면 실내에 들어온 먼지를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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