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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한국식 노사관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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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한국식 노사관계" 만들자

입력
2004.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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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등장은 앞으로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를 포함한 노사관계의 안건들이 정치권에서 심도 있게 논의될 것임을 예고한다. 노동조합과 사용자 모두 국내의 노사관계가 지금보다는 더욱 발전하고 성숙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을 하지만 구체적인 방향에 대해서는 첨예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서 이 난제를 해결한 여러 선진국들의 경험을 보면 주요한 교훈이 도출될 수 있다.오래 전에 노사간에 심각한 갈등을 경험한 미국, 영국, 독일, 스웨덴,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갈등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으나 그것이 어떤 질서 있는 제도의 틀 내에서 타협될 수 있다는 상당한 수준의 사회 및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즉 노사 간의 불평등은 너무나 심각한 상황이라 자본주의가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는 마르크스적 시각과 달리 체제 내에서 상당한 타협과 조정이 가능하다고 파악한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노사 간 갈등적 이해의 타협가능성을 인정하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각 국가별로는 다양한 노사관계 제도가 존재하고 있다. 미국이 단체교섭을 중심으로 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는 반면 영국은 단체교섭과 더불어 노동당을 통한 노동조합의 정치적 활동 등도 중요시한다. 또 독일이나 스웨덴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노조의 단체교섭이나 공동참여 및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포괄하는 사회적 합의주의라는 제도적 틀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기업 단위의 노조가 지나치게 사용자에게 종속된다는 비판도 있지만 공동체를 강조하는 사회·문화적 전통과 어울리는 협력적인 노사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선진국의 경험을 보면 노사관계의 선진화에는 노사 갈등의 가능성 인정, 체제 내에서 각 국가들의 독특한 환경적 토양에 맞는 제도, 이에 대한 어느 정도의 사회 및 정치적 합의라는 세 가지 전제조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국내의 노사관계 제도는 이러한 세가지 전제 조건들에서 모두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우선 현재의 노동조합이나 단체교섭을 중심으로 한 제도는 1953년 노동법 통과로 형성되는데 이 법은 미국과 일본의 노동법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우리의 환경적 토양과 이 제도가 맞는지에 대한 학자나 법률 입안자들의 충분한 고민이 부족했고 노·사·정 간의 협의나 합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 53년 이후 이 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특히 노동조합의 권리를 무시하는 사용자들의 온갖 불공정 노동행위가 만연했다. 노사 갈등이 발생하는 현장에서 법을 공정하게 집행해야 할 도청 및 경찰 공무원들이 사용자들에게 매수되거나 조정되는 사례가 빈번했다.

그 후 5·16 쿠데타와 유신 헌법, 5·18 광주민주항쟁 등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변혁 속에서 서구의 기준에서 보는 정상적인 노조 활동은 지속적인 기업의 성장과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로 제한되는 경우가 흔했다. 노사 갈등 존재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망스럽게도 문민정부 초기에도 정상적인 노조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노동법 개정은 실현되지 않았다. 또한 국민의 정부가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합의를 시도하였으나 성공한 유럽 국가들과 아주 다른 한국 노사관계의 환경적 토양이 무시된 상태였으므로 제한된 성과만을 거두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진보적인 학자나 정당들에 의해 네덜란드나 스웨덴식 노사관계 모델이 거론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선진 모델을 거론하는 자체가 과거와 마찬가지로 엄연히 존재하는 우리의 토양에 대한 고민이 부족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라도 노사관계의 제도 구축이 성장과 분배를 조화시키는 장기적 초석이 되는 중대한 사안임을 인식하고 우리 토양에 맞는 제도를 좀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같이 고민하고 협의해야 할 때이다.

/정주연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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