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분파울로 코엘료 지음·이상해 옮김
문학동네 발행·9,500원
세계의 많은 작가들이 그래왔듯 파울로 코엘료(57)도 성(性)에 관한 소설을 썼다. 장편 '11분'이다. 제목 '11분'은 인간의 성 행위의 평균 지속시간. 브라질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인 그는 이 책의 주제를 '억압'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성에 대해 대놓고 얘기하면서도 삶의 한 부분인 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억압한다. 11분은 그러나 우리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기도 한다. 우리는 성을 과대평가하기도, 과소평가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주제를 인생에서 성이 가지는 힘으로 잡았다."
소설은 브라질의 한 시골도시에서 자란 마리아라는 젊은 처녀의 이야기다. 열한 살에 이웃 남자애를 짝사랑했지만 외면당하고, 10대에 남자친구를 사귀지만 가장 친한 친구에게 빼앗기고는 사랑이란 고통만 준다고 믿게 된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의 휴가 여행 중 마리아는 한 남자에게서 연예인으로 성공시켜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스위스 제네바로 떠난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녀가 하게 된 일은 몸을 파는 것이다. 마리아는 그러나 좌절하는 대신 자신이 처한 상황을 기록해 나가는 것으로 삶에 의미를 부여해 나간다.
코엘료의 새로운 작품은 작가가 창녀였던 적이 있는 여자와 만남으로써 쓰여졌다. 지금은 결혼해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여자가 젊은 날에 겪었던 체험을 듣고 코엘료는 성에 관한 본격적인 고찰을 시작했다. 그는 성이 '사랑이라 불리는 영적 에너지의 현시'라는 것을 잊고 있음을 깨달았다. 작가는 사람들이 성을 매개로 타인과 어떻게 결합하는가에 관심을 갖고, 그가 보고 들은 이야기를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고 마음먹었다. 소설 '11분'은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주인공 마리아의 이름이 성경의 동정녀의 이름과 같다는 것은 반어적이다. 창녀가 된 마리아가 한 줄 한 줄 써나가는 일기는 사랑과 성의 의미를 정면으로 탐구하는 과정이다. '사랑은 마치 나는 열외라는 듯, 나한테서는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고 느끼기라도 하는 듯 날 피해다니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나는 이때껏 사랑을 자발적인 노예 상태로 여겨왔다. 하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다. 자유는 사랑이 있을 때만 존재하니까. 자신을 전부 내주는 사람,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끼는 사람은 무한하게 사랑할 수 있다.'
마리아는 젊은 화가 랄프 하르트에게서 사랑과 성의 합일을 발견하고, '단 11분이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모든 것으로 이끌 수 있는 영원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마리아와 랄프의 재회로 마쳐지는 행복한 결말을 통해 작가는 인간의 육체와 영혼이 함께 사랑으로 통합될 수 있음을 희망적으로 알려준다. 코엘료는 "두 육체의 어울림이 육체적 반응이나 종족 보존에 대한 본능 이상의 것임을 깨닫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인간의 특성과 모든 문화적 인습을 그 안에 끌어안고 있다"고 밝혔다. 이 말은 그가 들려주는 마리아라는 한 창녀의 이야기가 실은 마리아라는 한 '인간'의 이야기임을 가리킨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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