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끝나면 김혁규 전 경남지사를 차기 총리로 지명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7일 알려졌다. 5일 밤 서울 삼청동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 공관에서 열린우리당 핵심 중진 8명과 만난 자리에서였다. 노 대통령이 김 전 지사를 차기 총리감으로 마음에 두고 있음은 17대 총선 이후 여권 주변에서 계속 흘러나온 이야기지만, 이번의 경우 노 대통령의 직접 언급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김 전 지사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대와 관련, "상생의 정치를 얘기하지만, 한나라당이 3번이나 (김 전 지사를) 경남지사로 공천하지 않았느냐"며 "하자가 있다면 그렇게 공천을 했겠느냐"고 말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노 대통령은 또 "지사직을 버리고 온 김 전 지사의 결단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 CEO형 총리에도 어울리는 것 같다"며 사실상 김 전 지사를 차기 총리로 낙점했음을 밝혔다고 한다. 개각은 총리청문회를 거쳐 내달 20일께 중폭으로 있을 것이라는 언급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개각을 비롯, 집권 2기 국정운영 방안에 대한 논의가 3시간여 동안 진행된 이날 회동에서는 그러나 일부 참석자가 김 전 지사의 총리 기용에 대해 한나라당과의 관계악화 등을 이유로 부정적 견해를 피력, 난상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정동영 의장의 입각과 관련해서는 노 대통령이 특별한 언급은 없었지만 입각을 권유하는 분위기였고 참석자들 역시 찬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의장은 이에 관해 일절 입을 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근태 원내대표는 입각이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고, 본인도 이를 수긍하는 표정이었다고 한다.
회동에서 노 대통령은 또 우리당 원내대표 경선에 대해 "노심(盧心) 얘기를 많이 하지만 나는 엄정 중립"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이날 회동은 김 비서실장의 초청으로 이뤄졌고, 노 대통령이 도중에 참석하면서 열띤 토론이 시작됐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자리인 줄 모르고 갔다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회동에는 노 대통령 부부와 김 비서실장 부부, 정 의장과 김 원내대표, 김 전 지사, 김원기 이부영 유재건 의원, 문희상 김명자 당선자 등이 참석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한나라,"盧, 法무시 여전"
한나라당은 7일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중진들과의 회동에서 발언한 내용이 알려지자 "야당을 무시하고 법을 무시하기는 탄핵 전이나 탄핵 후나 달라진 게 없다"며 격하게 비난했다.
한나라당은 직무정지 상태에 있는 노 대통령이 탄핵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숙하지 않고, 개각 문제를 논의하는 등 사실상의 직무행위를 한 것은 헌법을 유린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상당수 의원은 "노 대통령이 벌써 탄핵심판 결과를 알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표는 이날 "탄핵결정이 나오지 않았는데 노 대통령이 (탄핵심판이) 다 끝난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여옥 대변인은 "노 대통령은 (탄핵소추 전과)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고 비난했다. 홍준표 의원은 "탄핵소추를 당해 직무정지 중인 대통령이 정부 인사를 논의한 것은 또 하나의 헌법 위반"이라고 쏘아붙였다. 일부 의원은 "제 버릇 남 주나"라는 등 원색적 표현까지 쏟아냈다.
특히 김 전 지사를 차기 총리로 기용하겠다는 뜻을 밝힌 대목에 대해선 상생의 정치가 구두선에 불과하고, 야당에 싸움을 강요하는 '선전포고'라고 규정했다. 박 대표는 "야당의 존재를 싹 무시하면 어떻게 한쪽의 노력만으로 국민이 바라는 정치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전 지사가 총리로 발탁될 경우 '상생정치'의 균열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다.
김형오 사무총장은 "야당이 기피하는 김 전 지사를 고집하며 오기 인사를 하겠다는 것은 재·보선에서 PK(부산·경남) 성문을 깨부수겠다는 정략적 발상"이라고 날을 세웠다. 직무 복귀 후 노 대통령의 행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권오을 의원은 "노 대통령이 우리당을 과반수 제1당으로 만들며 무혈혁명을 이뤘는데 누가 제어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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