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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두번 우는 이·태·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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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두번 우는 이·태·백들

입력
2004.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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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어버이날에는 반드시 어엿한 직장인이 돼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겠습니다." 8일 어버이날을 맞는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들은 저마다 죄인이 된 듯한 느낌이다. 학교를 졸업한 뒤 무직자 신세로 전전하는 불효자 처지인 까닭에 어버이날에는 더더욱 부모 볼 낯이 서지 않는다. 취직 문제로 고민하는 이태백들의 어버이날 자화상이다.

2002년 2월 인천 모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한 김모(27)씨는 아직도 학교 인근 자취방에서 취업준비를 계속하고 있다. 홀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이 차로 1시간 남짓 거리인 경기 안성이지만 8일 집을 찾지 않고 학교 취업정보센터에 틀어박혀 있을 생각이다.

"어버이날에 집에 가지 않은 게 벌써 3년째예요. 어머니도 어버이날에는 마음이 불편하실 것 같아 일부러 5월 중순쯤 집에 다녀오곤 합니다. 지난해에도 '다음 어버이날에는 반드시 자랑스런 아들의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는데 결국 안됐어요. 내년에는 그렇게 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김씨는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무역회사 취업꿈이 어렵게 되자 전공을 살려 교원임용고시를 준비 중이지만 이도 녹록하지 않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시험에서도 거푸 낙방했다. 시험준비를 하면서 일반 기업체에도 계속 원서를 들이밀고 있다.

"어머니가 시장에서 옷수선을 하면서 저를 대학까지 보냈고 지금도 매달 40만원의 생활비를 받아 쓰고 있어요. 제빵기능사 자격증을 따서 제과점에 취직한 여동생이 어머니를 곁에서 모시고 있습니다. 언제쯤 어머니에게 떳떳이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날이 올는지…." 김씨는 말도 다 끝내지 못한 채 풀 죽은 얼굴로 자리를 떴다.

직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실업자가 된 이모(28)씨는 이태백으로 처음 맞는 어버이날이 이렇게 부담스러울지 몰랐다. 2002년 K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경기 지역의 한 회사에 들어갔지만 지난해 연말 회사가 중국으로 옮겨가면서 국내 사무실을 폐쇄했다. 지난 2년간은 어버이날마다 최고급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맛난 것도 사드렸지만 올해 어버이날은 도무지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지난해 2월 서울의 명문 사립대를 졸업한 최모(28)씨도 1년 반이 지나도록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9일에는 한 회사의 입사시험이 있어 인천의 집에 가지 못한다.

"TV홈쇼핑을 보다가 안마기나 온열기 같은 효도상품이 나오면 '나도 빨리 취직해서 저런 것을 사드려야 하는데' 하는 생각뿐입니다. 성인이 됐는데도 돈을 받아 쓰고 있으니 특히 어버이날은 그저 괴로울뿐입니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황재락기자 find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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