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스 콤플렉스한스 요하임 마츠 지음·이미옥 옮김
참솔 발행·1만1,000원
마마 보이, 아동학대 수준의 과잉 교육열, 세계 최고의 40대 남성사망률, 최저 출산율, 섹스할 때 여성상위 체위에 공포를 느끼는 남성….
지금 우리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이같은 상황들은 서로 연관이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독일의 정신과 의사 한스 요아힘 마츠 박사는 이러한 문제들이 모두 같은 원인에서 발생하는 연결된 사회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독일에서 최장기 베스트셀러로 군림하고 있는 그의 저서 '릴리스 콤플렉스'는 현대인의 가족과 성, 사랑을 살리기 위해 '릴리스(Lilith) 콤플렉스'를 극복할 것을 제안한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신은 아담과 똑같은 방식으로 릴리스를 만들었다. 아담의 첫 번째 아내 릴리스는 아담에게 복종하지 않았고, 둘 다 흙으로 빚었기 때문에 평등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화가 난 아담은 순종적인 이브로 아내를 갈아치운다. 릴리스는 권력과 성을 추구하고, 아이를 싫어하며, 독자적인 삶을 사는 여성을 상징한다.
저자는 가부장제 사회가 복종적이고 희생적인 여성 이브를 숭배하고, 릴리스는 악마 취급을 해왔다고 주장한다. 릴리스는 여성의 중요한 본성 중의 하나인데, 남성중심사회는 이브만이 여성의 참 모습인 것처럼 강요했다는 것이다. 여성의 릴리스적인 측면을 지나치게 억압하는 문화현상을 뜻하는 릴리스 콤플렉스는, 여성에게만 자녀양육의 책임을 전가하고 여성의 쾌락을 부정하는 성차별 논리이다.
이 책은 현대사회에서 보살핌의 윤리와 공동체 정신의 실종, 모성애 결핍혹은 모성애 중독으로 인한 자녀의 깊은 상처, 남녀간의 성 갈등과 소통 불능의 원인을 릴리스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릴리스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사회는 취업, 가사, 양육의 3중노동에 시달리는 기혼 여성에게도 '완벽한 어머니'가 될 것을 요구한다. 여성은 이러한 사회구조에 위선적 모성애로 적응한다. 현모양처가 아니라는 비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여성은 자신의 고통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 결국 어머니는 교통 체증처럼 해결되지 못한 감정이 질병과 심리 장애를 가져오는 '감정 정체' 상태에 빠져, 자신의 분노를 숨긴 채 의무감과 거짓 감정으로 자녀를 대하게 된다.
여성의 욕망을 억압하는 릴리스 콤플렉스는 자녀에게도 큰 상처와 좌절을 준다. 취업 여부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기혼 여성들에게 자녀 교육의 성공, 특히 입시 전쟁에서의 승리는 여성의 바람직한 자아 실현 방법이자 '노후 복지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자식을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하는 어머니는 무의식적으로 자녀에게 보상받기를 원하고, 아이에 대한 사랑을 악용하게 된다.
저자의 이론은 우리사회의 낮은 출산율을 설명하는데도 매우 유용하다. 2001년 현재 한국 기혼 여성의 취업률은 49%로, 과반수에 육박한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자녀 양육을 여성 개인에게만 전적으로 부담 지우고, 육아에 대한 사회적 인프라는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낮은 출산율은 결혼한 여성이 아이를 적게 낳아서가 아니라 젊은 여성들이 아예 결혼 자체를 기피하기 때문인데, 이는 한국사회의 릴리스 콤플렉스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라고 볼 수 있다.
릴리스 콤플렉스는 남녀간의 성과 사랑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남성은 여성이 릴리스적인 면을 드러낼까 두려워하며, 이러한 불안을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방식으로 해소한다. 성 관계에 대한 저자의 입장은 매우 흥미로운데, 한 사람이 상반되는 행동을 모두 할 수 있을 때 이를테면, 능동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수동적인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면 쾌감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릴리스 콤플렉스에 걸린 사회는 능동성을 남성 역할로, 수동성을 여성 역할로 고정하여 쾌락을 방해한다.
/정희진 서강대 강사·여성학
■릴리스 콤플렉스 극복을 돕는 책들
'남자의 탄생―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전인권 지음·푸른숲 발행) 엄격한 성역할 고정 관념에 근거한 한국적 육아 방식인 엄부자모 논리가 어떻게 '아들을 망치는지'를 한국사회의 남성성, 한국 정치구조와 연결하여 탁월하게 분석한 책. 정신분석, 정치학, 사회학, 가족학, 인류학적 시각과 방법론을 넘나든다.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 모성의 신화에 대한 반성'(아드리엔느 리치 지음, 김인성 옮김·평민사 발행) 모성을 성차별과 연결하여 분석한 페미니즘의 대표적 고전. 페미니즘이 비판하는 것은 모성 그 자체가 아니라 제도화된 모성이다. 여성의 출산 능력을 비하하고 여성의 모성성을 공적 영역에서 성차별의 근거로 삼는 가부장제 사회의 반성을 촉구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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