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계가 흉흉하다. 사방에서 부도소문이 들리고 문 닫기 직전에 처한 기업들의 신음이 음울한 합창을 이루고 있다. '기업 못해먹겠다'는 분노섞인 자조 분위기는 극에 달했다. 고사(枯死)로 몰고 가는 열악한 기업환경 속에서 용케 살아남은 중소기업을 두고 기업인들은 '기적'이라고 말할 정도다.기업의 해외탈출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죽지 않으려면 불모지를 떠나는 길밖에 없다. 기업은행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중소기업의 80.3%가 5년 이내에 해외로 나가겠다고 응답했다. 이전계획이 없는 기업은 15.6%에 불과하다. 이 땅이 중소기업의 불모지로 변했음을 입증해주는 조사다. 진출 희망지역으로 중국(69.9%)과 북한(33.2%)을 꼽았다.
지금의 중국은 신발·섬유 기업들이 다투어 공장을 이전하던 10∼20년 전의 중국이 아니다. 저비용만 믿고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원자재·전력·인력난을 견디지 못하고 시설을 헐값에 넘기고 철수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임금은 매년 10% 이상씩 뛰어 저임금의 장점은 사라지고 있고 숙련된 인력 구하기도 어렵다. 중국에서도 이른바 3D현상이 일반화, 이런 업종에서 인력 구하기는 더욱 힘들다. 전력이나 용수 공급의 차질로 일주일에 2∼3일 공장가동을 중단해야 한다. 유치할 땐 '무조건 환영'이라고 하지만 공장을 세우고 나면 공해산업이라고 가동을 못하게 하기도 한다.
앞으로의 전망은 더 어둡다. 중국정부가 과열경기 진정책을 펴면서 관련 업종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외자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도 줄이고 단순 임가공이나 공해발생 산업은 퇴출시키려 하고 있다. 앞으로 중국정부의 정책이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따라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생사가 좌우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해외탈출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국내에선 도저히 버텨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앉아서 죽느니 나가서 발버둥이나 쳐보자는 심정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한 산업공동화는 피할 수 없다.
상장 중소기업의 34%가 부도위험에 직면해있다는 한국은행 보고서가 아니더라도 160조원에 달하는 중기대출의 만기가 돌아오는 올해는 중소기업의 토대가 유지되느냐 붕괴되느냐의 기로다. 정부와 금융권은 곧 실태조사를 실시, 회생기업과 퇴출기업을 구분해 과감한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하지만 아무도 정부의 중소기업정책을 신뢰하지 않는다. 기업할 수 있는 기본토양이 마련돼있지 않은데 잠시 물을 뿌리고 비료를 준다고 되겠느냐는 인식이 뿌리깊다.
정부가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으로 떠나고 개성공단에 들어가겠다고 목을 빼고 기다리는 중소기업들의 딱한 사정을 알기나 하는지 의문스럽다. 모두가 일자리 창출과 민생 우선을 갈망하는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와 재계의 힘겨룸이나 정당간 성장·분배 논쟁은 부질 없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에게 올바른 수영법을 가르치겠다는 꼴이다. 중소기업들이 쓰러지는 판에 경제부총리가 해외에서 투자설명회를 갖는 것도 공허하기는 마찬가지다.
먼저 기업들이 이 땅을 떠나지 않게, 다음은 떠난 기업도 돌아올 만한 파격적인 기업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도 상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것이어야 한다. '새로운 정치와 경제 발전을 위한 여야 대표 협약'을 채택한 정치권이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바로 기업인들이 신나게 기업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그러면 기업더러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않는다.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경기는 저절로 부양된다. 이 길만이 산업공동화를 막고, 경제를 회생시키는 길이다.
/방민준 논설위원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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