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홍상수의 영화는 늘 의표를 찔렀다. 데뷔작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부터 ‘생활의 발견’까지 그의 영화는 지리멸렬한 불륜의 연대기를 각기 다른 독특한 형식으로 관찰했다.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된 홍상수의 신작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로 말하자면 새 형식을 발명했다기보다는 하다가 만 것 같은 이야기로 관객의 김을 뺀다. 이것 역시 의표를 찌른다면 찌른 셈이다.“애걔, 겨우 여기서 끝이야” 라는 황망한 감정을 안고 일어서게 만드는 이 영화는 감독인 홍상수의 말에 따르면 어중간한 길이의 중편소설 같은 작품이다. 다시 한번 감독은 우리의 예상을 배반했지만 따지고 보면 영화 속에 나오는 황폐한 불륜의 곡절 속에서 남자 주인공이 곧바로 집에 돌아가기도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좀 더 밤거리를 방황할지도 모른다.
무슨 얘기냐고? 짐작하시는 그대로다. 한 여자를 시차를 두고 사랑했던 두 남자가 오랜만에 만난다. 두 남자는 선후배 사이다. 낮술을 마시던 이 남자들이 술김에 옛 애인을 만나러 부천에 간다. 황량한 도시를 배경으로 거기서 두 남자와 한 여자는 진전되지 않는 연애의 욕망을 되풀이하고 짧게 섹스를 나누고 느닷없이 헤어진다. 곧바로, 그 중 한 남자는 다른 이들과 또 다른 섹스 게임을 시작한다. 물론 그 끝도 해피 엔딩은 아니다. 긴 설렘과 집착 다음에 짧은 충족과 허무가 남는 홍상수식 인간 관찰기는 여전하다.
아쉬운 것은 ‘오! 수정’에서 ‘생활의 발견’까지 욕망과 허영에 달뜬 인간 군상을 긍휼히 여겼던 감독의 넉넉한 시선이 여기서는 오히려 팍팍해졌다는 것이다. 사실, 연애의 겉치레와 적나라한 섹스 욕망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들은 보는 것이 이젠 질리기도 한다.
홍상수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은 좀 더 행복해지지 않으면 안 되는가. 거리를 갖고 관찰되는 그들의 불행은 우리에게 웃음을 주지만 이 영화는 음흉하게 경고한다. 당신도 언제 다칠지 모른다. 조심하라. 어쨌든 이 영화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성현아의 매력이다. 영화 속의 남자들을 허둥대게 만드는 선화 역의 그녀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스크린 연기의 전기를 마련한 듯이 보인다.
임찬상의 데뷔작 ‘효자동 이발사’는 현대사의 복판에서 각하의 머리를 잘랐던 한 이발사의 인생역정을 통해 거대한 역사와 하찮은 개인의 이야기를 병렬시킨다. 송강호가 연기하는 주인공 한모에게 역사는 이발소의 창을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이다.
거기 멋모르고 끼어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피해자가 되지만 이 영화가 정색을 하고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역사와 우화 사이에서 ‘효자동 이발사’는 절묘한 거리를 취하고 있으며 이것은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곧 이 영화는 역사가 얼마나 개인의 삶을 깊숙이 관통했는지를 보여주기보다는 개인의 시선을 통해 역사 그 너머의 삶에 대해 말한다. 투사 아니면 변절자의 삶으로 나뉘는 전체주의적 이분법의 경계를 부수고 소시민의 맨 얼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장점이 이 접근법에는 있다. 울컥 하는 감상과 눈물과 분노 없이도 지나간 시절을 돌아보는 이 차분한 시선의 가능성에 일단은 주목하게 된다.
김영진/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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