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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커버스토리-꼬리무는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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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커버스토리-꼬리무는 음모론

입력
2004.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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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화성에 살던 두 종족간에 큰 전쟁이 벌어졌다. 파괴와 살육으로 점철된 이 전쟁의 결과, 양쪽 모두 거의 전멸했고 전 지역은 폐허로 변해 버렸다. 살아남은 극소수의 과학자들은 화성에선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자 우주선을 타고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났다. 그래서 발견한 별이 지구였다.당시 지구인들은 언어도 없는 미개인에 불과했다. 화성인들은 아름다운 지구를 더욱 잘 가꾸고 지켜내기 위해 자신들의 문명을 가르치는 등 지구인 교육에 정성을 쏟았다. 하지만 지구인들의 지적 수준이 너무 낮아 효과를 보지 못하자 우선 언어를 만들어 사용하게 하고, 불과 도구를 쓰는 법을 가르쳤다.

문제는 지구인들이 야만상태에서 벗어나면서 점점 호전성을 키워갔다는 것. 화성인들은 지구인들이 자신들의 과오를 되풀이할까 두려웠다. 그래서 싸우지 않고 서로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며 화해와 관용의 마음을 가져야 모든 과학 지식을 전수해 주겠다고 조건을 달았다.

화성인의 이야기는 고대 인류문명의 발상지에서 신화적 형태로 기록됐다. 수메르 문명에선 하늘로부터 내려와 문화와 기술을 전수해준 천사 '아눈나키'로, 히브리 종교문서에서는 네필림으로, 조로아스터교에서는 감시자들로 불렸다.

공상 과학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아니다. 이런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이들은 UFO가 지구 곳곳을 누비고 다니고, 화성에 문명이 존재한다고 철썩 같이 믿는다. 달 또한 거대한 인공위성이라고 우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이 모든 사실을 미 우주항공국 나사(NASA)가 은폐하고 있으며 그 이면에서 외계인의 거대한 음모가 진행중이라고 주장한다. 이른바 외계인 존재론, 화성 문명론 등을 줄기차게 외치는 이들은 ‘정신 나간 사람들’이라는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아도 신앙에 가까운 믿음을 꺾지 않는다. 그래서 세력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곳 저곳에서 정치공학과 계략이 기승을 부리면서 황당무계한 음모론도 춤을 춘다.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부분도 있고, 기발한 착상과 농담 정도로 웃어 넘길 부분도 있다. 이성의 고삐를 절대 놓치지 않으면서 음험함과 해학이 공존하는 그 세계로 들어가보자.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일러스트 김영민기자 kart0007@hk.co.kr

■세기의 음모론들

비밀결사체 혹은 비밀 정부 음모론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참여하는 비밀결사체가 세계 제패를 노리고 암약하면서 모든 정치 사회적 사건을 배후조종하고 있다는 음모론으로, 다양한 형태로 내려오고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프리메이슨(Freemason) 조직이 모든 종교와 정부를 전복해 '뉴 월드 오더'라는 새로운 세계정부를 꾸미고 있다"는 주장이다. 프리메이슨은 18세기 초 영국의 석공 길드가 중심이 돼 만든 자선 결사체. 초창기엔 모든 종교에 관용적이었기 때문에 카톨릭과 마찰을 빚어 비밀 결사적 성격을 띄었다. 한때 영향력이 상당했지만 20세기 들어 정치적 성격은 거의 사라진 자선 봉사단체로 활동하고 있을 뿐이다.

18세기 유럽에서 만들어졌다가 곧 와해됐던 비밀조직인 일루미너티(Illuminati)가 프리메이슨의 배후조직으로 여전히 존재하면서, 악마적인 신세계 질서를 세우려는 음모를 획책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또 유럽의 반유대주의적 정서 속에서 유대인 금융 자산가들이 '시온의정서'에 따라 세계 정복을 획책하고 있다는 음모론도 줄기차게 나온다.

이런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로, 비밀결사체들이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재촉하고 세상의 종말을 오게 만든다고 믿는다. 이런 음모론은 대개 신앙적 수준에 올라있기 때문에 합리적 토론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달 음모론

달 뒷면에 나치의 비밀기지가 있다는 등 달에 관한 음모론은 여러가지다. 그 중 몇 년 전 시사프로그램에서 다룰 정도로 유행했던 것은 달 착륙 날조설.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은 조작된 것이란 주장이다. 진공 상태인 달 표면에서 성조기가 흩날리고, 그림자가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나 있는 사진 등이 근거로 제시됐다. 미국과 소련이 치열한 우주개발 경쟁을 벌이던 상황이어서 이 주장은 큰 힘을 얻었다. 하지만 당시 달에서 가져온 암석은 지구에서 발견될 수 없는 종류여서 이 주장은 곧 사그라들었다.

달 음모론 중 가장 황당한 것은 달이 누군가가 만든 거대한 인공위성이라는 주장이다. 근거로 제기된 것은, 달의 자전주기와 지구의 공전주기가 희한하게도 일치해 달의 뒷면을 볼 수 없고, 공개된 달 뒷면 사진 또한 극히 적다는 점, 지진파 분석 등을 볼 때 달의 중심이 비어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등이다. 또 여러 민족의 고대 신화에서 홍수 시대 이전에는 달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도 덧붙여졌다.

하지만, 달의 자전주기와 지구의 공전주기가 일치하는 것은 지구와 달이 공명관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상한 우연적 상태가 아니라 힘의 주기가 일치하는 안정된 상태로 가려는 물리적 법칙에 따른 것으로, 자연의 필연적 상태다. 달 내부가 비어있다는 주장은, 20세기초에 유행했던 지구 내부가 비어있다는 지구 공동설을 변형한 것이다.

외계인 음모론 혹은 나사 음모론

외계인 관련 음모론 또한 무궁무진하다. '지구문명은 외계인이 착륙해 건설한 것이다'. '인간은 외계인의 복제다', '사회 곳곳에서 지구인으로 변장한 외계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유없는 가축의 집단 떼죽음은 유전자 조작실험을 하려는 외계인의 소행 때문이다' '외계인이 나타난 뒤에는 검은 옷을 입은 맨인블랙이 방문한다'는 등 영화인지 소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주장이 넘쳐났다. 물론 이런 모든 외계인의 존재와 소행을 NASA가 알고 있지만, 은폐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외계인 음모론의 진앙지이자 UFO론의 빅뱅이 된 사건이 로스웰 사건이었다. 1947년 심한 폭풍이 몰아치던 날, 뉴멕시코주의 로스웰 지역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물체가 추락했는데, 이것이 바로 UFO라는 것. 미공군이 사실을 은폐한데다 목격자들의 기억이 여러 해에 걸쳐 일어난 일을 뒤죽박죽으로 섞어 늘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또 위조된 외계인 검시필름까지 만들어지는 등 UFO론의 메카이지 거대한 늪과도 같았다. 하지만 미 공군의 비밀 프로젝트를 시행중이었던 비행기구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유명인 의문사

유명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음모론의 단골 메뉴. '존 F. 케네디는 CIA의 음모로 죽었다' '존 레넌은 FBI의 음모로 죽었다'는 등이다. 최근에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론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90년대 초 자살한 록스타 커트 코베인이 타살됐다는 음모론도 나온다. 국내에서도 김구 선생의 암살과 관련된 음모론이 끊이지 않듯, 의문사의 경우 그 배경과 관련한 의혹은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 않다. 물론 '이소룡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 거나 '폴 매카트니는 이미 죽었고, 닮은 사람이 대역을 맡고 있다'는 황당한 음모론도 있다. /송용창기자

■왜? 어디서?/음모론 1번지는 '속삭이는' 정치권

최근 벌어진 북한 용천역 열차폭발 사고. '부주의에 의한 단순사고'라는 북한당국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배후에 무엇이 있지 않을까'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홍콩의 한 신문은 아예 김정일 암살 음모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탄핵정국이란 미증유의 사건을 거치면서도 사람들은 또 저마다 음모론을 설파했다. "탄핵은 내각제 개헌으로 나가려는 수구세력연합의 거대한 음모였다" "탄핵은 미국 워싱턴의 네오콘이 주도한 치밀한 음모다" "어리숙한 야당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유도 음모에 걸려들었다" "촛불집회는 북한과 연계된 좌파세력이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 등등. 뿐만 아니다. 과거 안기부의 몫이었던 '음모 온상지'가 이제 검찰로 넘어왔다. 툭하면 '00수사는 00 죽이기 음모다'는 말이 나온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 의혹과 의심은 날이 저무는지 모른다. 어쩌면 이 정도는 약과다.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이소룡은 죽은 것이 아니고 살아있다' '나사는 외계인의 존재를 알면서도 은폐하고 있다' '그림자 정부가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다'는 등 황당무계한 이야기까지 쏟아진다. 음모론에 맛 들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은 허위'라는 자가당착에 빠지고, 모든 역사는 말 그대로 음모의 파노라마로 보인다.

모든 것이 낱낱이 밝혀진다는 대명천지의 정보화 세상에서도 음모론이 그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음모론에 솔깃하게 귀를 기울이는 것일까.

책략정치

문제는 역시 정치 분야다. 음모론 배양의 1번지가 정치라는 데 이론의 여지는 없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규범과 명분을 상실한 책략정치는 음모론이 발호할 최적의 온상"이라고 지적한다. 그동안 한국 정치가 특정 권력집단의 생존에만 몰두한 패거리 책략정치로 전락하면서 우리사회의 건전한 의사소통구조를 왜곡시켰다는 지적이다.

수시로 바뀌는 정치인의 말 속에서 진정성과 순정성은 상실된 지 오래고, 정치인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으면 바보가 되는 상황에서 누가 그 저의와 음모를 예상치 않겠냐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아니면 말고' 식 폭로정치. '검증될 수도 없고, 검증하지도' 않는 음모론의 특성을 가장 절묘하게 이용한 행태다.

희생양의 집단논리

음모론의 가장 우려스러운 측면은 '희생양의 심리'다. 희생양의 심리는 사회의 나쁜 결과나 잘못을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책임으로 돌려버리려는 행태. 멀리는 사회의 잘못이 마녀들의 소행 때문이었다는 중세시대 마녀사냥에서부터, 모든 사회악은 유대인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는 나치의 반유대주의에 이르기까지, 희생양의 논리는 집단의 위기를 피하는 손 쉬는 해결책이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유대인이 비밀결사체를 구성해 온갖 사회악을 배후조종하고 있다는 각종 '반유대주의 음모론'이 지금까지 유력하게 제기된다. 인터넷 사이트 '합리주의자의 도'를 운영하는 김진만씨는 "영화배우 멜 깁슨의 부친 또한 유명한 반유대주의 음모론자인데,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도 그 영향이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촛불집회는 좌파가 배후조종한 것"이란 음모론도 '원치 않는 사태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나온 심리적 방어기제'라는 해석이 많다. 이처럼 희생양의 심리를 책략정치가 이용할 경우, 그 부작용은 배가되고 자칫 사회 갈등의 화약고로 비화되기 십상이다.

정보 독점에 대한 저항적 방편

그렇다고 음모론이 부정적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화평론가 김동식씨는 "국가가 정보를 배타적으로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음모론은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라고 말했다.

군부독재 시절 벌어진 수많은 의문사에 대한 문제제기나 9·11 테러 사건에 대한 음모론적 의혹제기 등이 이런 맥락이다. 실제로 미국 정부가 1930년대 매독 연구를 위해 가난한 흑인을 상대로 실험을 했다는 음모론은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음모론의 범람은 그만큼 정보가 차단된 사회의 불투명성을 방증한다.

세속화된 신학?

정치가 깨끗해지고 사회의 투명성이 높아진다면 음모론이 사라질까. 서울대 국문학과 강사인 임재서씨는 "사람들은 누군가가 배후조종하고 있다는 데서 오히려 심리적 안정을 느낀다"며"예전에는 신이 그런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는 데서 평안을 찾았다"고 지적한다.

삶이란 극복할 수 없는 불안정성과 불투명성을 지녔기 때문에 이를 설명할 배후의 논리를 상정하게 되는데, 과거 이를 담당했던 신학이 위축되면서 등장한 한 형태가 음모론이란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음모론을 통해 세상의 불가해성을 설명하는 진실에 곧바로 접근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세상을 배후 조종하는 실체가 따로 있다는 '외계인음모론'이나 '반유대주의 음모론', '그림자정부론' 등이 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띠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임씨는 "음모론에 의탁할 것이 아니라 삶의 근원적 불확실성을 견뎌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농담의 음모론

음모론의 음험한 색채를 걷어내고, 음모론을 하나의 '농담'쯤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각종 사건에 대한 유쾌한 상상이나 가설이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

예컨대, 몇 가지 의문스러운 징후를 조합해 "폴매카트니는 이미 죽었고, 그를 닮은 대역이 활동하고 있다"는 음모론은 그 자체만 보면 기발한 발상이다. 비틀즈의 앨범 '애비 로드' 자킷 사진에서 공동묘지를 떠나는 비틀즈 멤버 중 폴 매카트니만이 맨발로 걷고 있는다는 점, 또 다른 앨범 자킷 사진에서는 폴 매카트니가 사망선고(Officially Pronounced Dead)란 뜻의 OPD가 적힌 완장을 차고 있다는 점, '유리양파(Glass Onion)'란 노래에서 '폴은 왈루스(Walrus·그리스어로 시체)'란 가사가 나온다는 점 등이 근거로 제시됐다.

한번쯤 머리를 굴려보는 상상력의 게임으로도 무난할지 모른다. 존 F 케네디 암살의 배후가 누구인지 당시 정국을 분석하면서 추론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탄핵정국에서도 "촛불집회는 양초를 많이 팔기 위한 양초회사의 음모다" "탄핵 시도는 민주주의를 확립하려는 야당의 몸을 던진 희생이었다"라는 등의 풍자적인 음모론도 등장했다. 물론, 망상과 상상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화성의 문명흔적 은폐됐다"

예컨대 UFO 문제가 나오면 대개는 '혹시반, 설마 반'하는 엉거주춤한 느낌을 가질 것이다. 술자리 화두로는 흥미롭지만 먹고 사는 일로 바쁜 세상에 왠 뚱딴지 같은 얘기냐고 핀잔이 나오기 일쑤다.

음모론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학창 시절 누구나 교실에서 한번쯤 이 문제로 열띤 논쟁을 벌였거나, 세상의 비밀을 알고 싶다는 욕망에서 날을 새우며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중 그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쫓아간 이들이 있다. '정말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일까.' 그 끝에서 그들은 남들이 모르는 놀라운 사실을 스스로 발견했다고 믿고 있다. 어쩌면 편집증, 어쩌면 호기심의 과잉일지 모를 음모론의 세계에 뛰어든 한 남자의 이야기다.

"아마 전쟁 등으로 폐허가 됐지만 화성엔 분명 문명의 흔적이 존재합니다. 그 진실이 이제 하나씩 벗겨지고 있어요." 지난달 29일 원주시에서 만난 이차복(38)씨는 이런 황당한 주장을,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라는 듯이 스스럼없이 말했다. 학원 강사를 하면서 화성 및 UFO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씨는 UFO와 화성, 달 등을 연구하는 인터넷 사이트 '진실을 찾는 사람들'(truth-finders.com)을 운영한다. 지난해 문을 연 '진찾사'는국내 UFO 관련 사이트로는 최대 규모이며 회원수가 3,700여명에 이른다.

지난 1월 화성에 착륙한 탐사로봇 스피릿과 오퍼튜니티가 밝힌 진실이라고 해야, '화성에 물이 존재했던 흔적이 있다'는 정도. 이씨는 그러나 "미항공우주국 나사(NASA)가 거대한 진실을 은폐하고 있지만, 서서히 그 일부가 드러나고 있는 증거"라며 흥분했다. 그 뿐이랴. 그는 "이것은 설이 아니라 과학적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이며 해외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과학적 데이터는 무엇이며 알만한 사람은 누구란 말일까? 기자는 역사를 뒤집는 '대특종'을 취재하는 중일까.

그가 근거로 제시한 것은 1998년부터 화성궤도를 돌고 있는 인공위성 MGS가 보내온 위성사진들. 놀랍게도 그는 MGS가 찍은 화성 위성사진 13만여장 중 5만여장을 손수 훑어봤다고 한다. 국내에서 그보다 화성사진을 많이, 또 꼼꼼하게 본 사람이 없을 것라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그는 NASA가 화성의 문명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통제하지만, 공개된 사진에서도 일부 흔적을 볼 수 있다며 사진 몇 장을 보여줬다. 직각을 이루거나 대칭적인 형태의 특이한 모습이 사진에 있는데, 이것이 자연지형에서는 볼 수 없는 인공적 구조물이라는 것.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자, 그는 "처음 보는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위성사진을 오랫동안 봐와 사진에 '눈'이 뜨인 전문가들은 이게 인공적인지, 자연적인지 금방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이라던 그의 주장은 '경험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전문가 곧, '알 만한 사람'들이란AR(anomaly researcher)이라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위성사진 등을 통해 나타나는 특이한 지형이나 현상을 연구하는 사람들로, 이씨처럼 수만 장의 화성사진을 섭렵한 이들이다. anomalyhunters.com 등이 해외의 AR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는 사이트. 이들에게 화성 문명은 기정사실이다.

최근 이 사이트에서 화두가 된 것은 스피릿이 며칠 동안 사진을 보내오지 않은 일. NASA는 고장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발표했지만, 바로 그날 한 AR이 NASA가 잠시 올렸다가 지운 사진을 캡쳐했는데, 동물의 발자국 비슷한 모양이 찍혀있었다는 흥미로운 일도 전했다. 이씨는 "분명 무슨 생물체가 나타났기 때문에 사진 공개를 중단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위성사진을 분석할 줄 안다면 알 수 있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왜 대학 교수들은 논문으로 발표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는 "공개적으로 발표했을 때 종교계의 항의 등 엄청난 위험부담으로 얘기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이라며 "그들이 일부러 이런 일을 감당하려고 하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MGS가 최근 길이 2∼3m에 불과한 화성탐사 로봇의 사진을 찍었는데 놀랐다며, 그 정도 성능이라면 왜 그동안 정밀한 화성표면 사진을 찍지 않았냐는 의문도 덧붙였다.

국내에서 AR로는 거의 유일한 이씨. 그는 화성에 대해 연구한 내용을 곧 책으로 출간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가 이렇게 화성에 대해 열성적인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호기심, 어린시절부터 풀고 싶었던 호기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화성 음모론이란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공상 과학소설 등을 통해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하지만 1960년대 마리너 화성 탐사선이 화성에는 돌과 모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밝혀내자 이 가설은 한풀 꺾였다.

그러다가 1990년대 초 한 장의 사진이 화성 음모론에 새로운 날개를 달아줬다. NASA의 화성탐사선 바이킹호가 1976년 화성의 사이도니아 지역에서 찍은 사진 중 사람의 얼굴을 닮은 거대한 지형을 찍은 것이 뒤늦게 공개된 것. 게다가 그 주변에서 5면체의 거대한 피라미드 지형까지 나오자, "피라미드 등을 둘러싼 고대 신화의 신비가 곧 화성의 외계인과 관계된 것"이라는 등의 기상천외한 주장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NASA는 1998년 화성 탐사위성 MGS를 통해 사이도니아 지역을 정밀 촬영한 사진을 공개, 얼굴을 닮은 지형은 "빛과 그림자가 우연히 만들어낸 착시 현상"이라고 해명했다. 음모론자들은 그러나 "3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얼굴 형상이 부분적으로 침식됐을 뿐 좌우대칭의 전체적인 윤곽은 여전히 뚜렷해, 인공적 구조물임에 틀림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처럼 화성에 문명이 존재했다는 음모론의 핵심 근거는 화성 위성 사진들. AR(Anomaly researcher)라고 불리는 음모론 주장자들은 "피라미드 지형은 수학적으로 아주 정밀하게 디자인돼 있으며, 주변 지형과 현저하게 차이가 나고, 45도나 90도 각도로 꺾이는 특이한 형태의 지형도 종종 나타난다"며"이는 인공구조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인면암에 대한 과학계의 입장은 "어떤 현상에서 패턴을 찾아 인식하려는 인간의 욕구가 빚어낸 착시현상인 파레이돌리아(pareidolia)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애매한 시각적 자극에서 특정한 형태를 잘못 추출해 빚어지는 시각적 오류라는 뜻이다. 예컨대, 상처난 나무에서 예수의 얼굴이 보인다든가, 계피 빵에서 성녀 테레사의 모습이 나타난다든가 하는 초자연적 현상도 모두 파레이돌리아 탓으로 돌린다.

또 위성사진 판독에 대해서도 박수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규칙적인 패턴의 반복이 인공 구조물의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며 "인공구조물로 판별하기 위해서는 다른 정밀한 기술적 방법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천문연구원 김봉규 박사는 "NASA의 과학자들이 집단적으로 진실을 숨긴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며 "과학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안티 음모론자들

"말도 안되는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제약회사에 근무하면서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진만(38)씨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 '합리주의자의 도'(www.rethinker.co.kr)의 외침은 직설적이다. 음모론을 비롯, 대체의학, 창조과학 등의 주장에 정면으로 맞서 일일이 그 허구성을 파헤친다.

사실 기상천외한 각종 음모론이 난무하지만, 설득력 있는 과학적 반박이나 해명을 찾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애써 무시하거나 아예 담을 쌓는다. 귀찮은 싸움에 말려드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노력은 더욱 이채롭다

가장 최근 그가 올린 글은 'JFK 음모론'을 파헤친 글. 존 F. 케네디 암살과 관련된 음모론의 핵심 중 하나는 한 발의 탄환이 어떻게 JFK와 옆에 앉은 코넬리 주지사의 몸에 일곱 군데의 상처를 낼 수 있냐는 것이었다. 이른바 '마술탄환'이라 불리는 이 현상 때문에 범인은 단독범이 아니며 정부가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음모론이 확산됐고, 영화 'JFK'에 까지 명백한 의혹거리로 등장했다.

하지만 김씨는 "총상 각도와 탄환분석을 통해 한발의 총알로 가능했다는 것이 이미 미국 대학 연구팀에서 밝혀졌다"며 "암살 배경과 관련한 의문은 남아 있지만, 적어도 한발의 탄환 만큼은 사실이라는 것이 드러났는데도 음모론자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볼려고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이 사이트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김씨가 직접 번역한 '회의주의자 사전'. 로버트 캐롤 새클라멘토대 교수가 90년대 초 작성한 이 사전은 UFO, 음모론, 대체의학, 신과학 등에 맞선 과학자들의 비판적 대응의 결산물이다. '회의주의자'(skeptic)란 초자연적 현상에 대해 의문부호를 달고, 이를 적극적으로 파헤쳐 그 허구성을 밝혀내는 연구자를 이르는 말이다.

"미국의 음모론은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 이상입니다. 특히 60년대 이후 미국에서 각종 오컬트(occult·심령) 문화나 유사과학이 홍수를 이루면서 과학적 인식 수준이 극히 위험 수위에 달했죠. 그때부터 과학자들이 '회의주의자 단체'를 만들면서 이런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갔던겁니다."

음모론이 득세한 미국에 비해 국내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긴 하지만 서점에는 이미 음모론을 비롯한 유사과학책들이 위험수위에 달할 만큼 범람해 있다는 우려다. 김씨는 "대중들이 사이비과학에 현혹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과학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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