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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인권보고서 다음에…" 美, 인권선진국이 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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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인권보고서 다음에…" 美, 인권선진국이 무색

입력
2004.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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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무부가 5일 예정된 미국 인권보고서 발표를 돌연 연기했다. 국무부는 4일 오후 내외신 기자들에게 부랴부랴 이메일을 보내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지하며: 미국의 기록'이라는 연례 보고서 발표가 취소된 사실을 알렸다. '기술적 이유'가 국무부가 설명한 연기 사유였다.국무부의 해명을 믿어보려 하지만 '기술적 이유'가 생긴 시간의 절묘함을 떠올리면 고개를 젓지 않을 수 없다. 미 정부가 예정된 중요 보고서 발표를 연기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특히 매년 같은 시기에 있어온 인권보고서 발표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취소하는 일은 사실상 전무하다.

그 예외성 때문에 인권보고서 발표 연기의 속사정을 이라크 땅에서 자행된 미군의 인권 유린 행위에서 찾는 것은 결코 상상력의 발동이 아니다.

이번에 발표하려던 '미국의 기록'은 미국 인권상황에 대한 자체 평가 보고서다. 미 국무부는 통상 이 보고서 발표에 2, 3달 앞서 세계 각국의 인권 상황을 평가한 세계 인권보고서를 공개해왔다. 미국 정부가 매긴 일종의 세계 인권 성적표인 셈이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세계 인권보고서는 결과적으로 인권상황이 열악한 나라의 인권을 신장시키는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상대국에 대한 외교적 압박 수단으로 작용하는 양날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보고서가 발표된 뒤에는 항상 여러 나라로부터 인권을 무기로 한 내정간섭이라는 반발이 뒤따랐다. 특히 중국은 매년 '미국의 인권기록'이라는 대응 보고서를 발표, 미국의 이중적 인권 잣대를 비판하면서 "당신네들 인권이나 잘 지켜라"고 맞서왔다.

미국이 이런 반발을 무시하고 매년 인권보고서를 내는 근저에는 "그래도 우리가 당신들 보다는 낫다"는 '인권 자부심'이 깔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재자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겠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켰던 이라크 땅에서 자국의 군인들이 이라크인들을 고문하고 강간하고 살해한 현실을 앞에 두고 과연 미국은 "우리는 인권의 천사"라고 외칠 수 있을까. 소름끼치는 인권유린의 백태를 보고 받고도 사죄의 말을 꺼내기보다는 "소수의 일탈"을 얘기하는 미국의 지도자들이 인권 선진국을 운운할 수 있을까.

미국이 스스로의 인권 상황에 대해 몇 점이나 주게 될지가 궁금하다.

/김승일 워싱턴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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