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깊어지면서 전국의 초록도 더욱 짙어간다. 비라도 한바탕 퍼붓고 나면 온 산은 매서운 속도로 초록으로 갈아입는다. 이런걸 두고 우후죽순(雨後竹筍)에 비유했던가. 하지만 높이 뻗은 대나무사이에서 땅을 헤집고 뾰족이 올라오는 진짜 죽순의 모습을 도심에서 보기란 쉽지 않다.학창시절 ‘전남 담양=죽세공’은 마치 수학 공식처럼 외웠던 단어였다. 그만큼 이 곳에는 대나무가 많았다는 말이다. 플라스틱의 등장과 값싼 중국산 대나무가 수입되면서 담양은 세인에게서 잊혀져 가는 듯했다. 그러나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다. 대나무 숲길 사이로 걷는 죽림욕이 유행하고, 죽순과 죽염이 건강식으로 자리잡으면서 담양은 웰빙시대의 가장 각광받는 여행코스로 거듭나고 있다.
●대나무골 테마공원/하늘 높이 치솟은 대나무 숲길 거닐며 '녹색샤워'
5월의 담양은 도시가 초록투성이다. 호남고속도로 백양산 IC에서 나와 장성읍을 지난 뒤 15번 지방도를 따라 가는 길에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가 등장한다. 언제부터인가 대나무와 함께 담양의 대표하는 상징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맛보기에 불과하다. 본격적인 가로수길은 첫번째 목적지인 대나무골 테마공원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다. 담양읍을 지나 24번 국도를 따라 순창방면으로 가다 보면 오른편이다.
길옆으로 1.7㎞가량 도열해있는 가로수 잎이 무성하게 자라 터널을 이뤘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잠시 내려서 걸어본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길 중 하나라는 소문이 결코 거짓이 아니다. 하늘을 가리는 가로수길을 걷다 보면 초록이 옷에 흠뻑 배일 것 같다.
가로수를 지나 10분 남짓 가면 석현교라는 작은 다리가 나온다. 건너자 마자 우회전, 농로를 따라 들어가면 대나무골 테마공원과 만난다. 3만여 평의 규모에 대나무숲을 이룬 곳은 1만 평 가량. 한 눈에 시선을 끌만한 볼거리를 기대한다면 실망스러울 수 있다. 입구에 죽로천이라는 이름의 샘물이 공원의 분위기를 말해준다.
화려하지 않지만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그런 샘물이다. 3개의 죽림욕코스가 있다. 산책로옆으로 하늘로 치솟은 대나무숲이 이어진다. 대나무는 지구상에서 가장 폭발적인 성장력을 갖춘 생명체중 하나. 하루에 키가 1㎙나 자랄 때도 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산소와 뇌파를 발생시킨다. 스트레스 해소, 심신안정에 효험이 있다.
대나무도 종류가 여러가지이다. 맹종죽이 4~5월에 가장 먼저 잎을 맺는다. 맹종죽에 이어 분죽, 참대에서 잇따라 잎이 열린다.
지금 이 곳은 진정한 우후죽순을 볼 수 있는 시기이다. 땅밑에서 새 생명이 자라는 모습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나무 사이로 간혹 차나무가 새순을 피웠다. 일반 녹차와 달리 대나무이슬을 먹고 자란다고 해서 죽로차(竹露茶)라고 부른다. 맨발로 황토길을 걷는 소나무산책로도 인기코스. 17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과 야영장도 갖췄다.
대표 신복진(66)씨는 “이 곳은 자연과 하나 되어 느림의 미학을 배우는 장소”라고 설명한다. (061)383-9291. 입장료 성인 2,000원, 학생 1,500원.
●소쇄원/복숭아, 장미 등 식물 20여종이 아기자기한 조경 뽐내
군청에서 담양 향교옆에 조성한 죽녹원이라는 곳도 있다. 푸른 기둥으로 솟아있는 청살문간판을 지나면 곧장 죽림욕장이 이어진다. 산들바람이라도 불면 사각사각거리는 그들만의 대화도 들을 수 있다. 한바퀴 도는데 20분 남짓이면 충분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심신이 안정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입장료 없음.
대나무와 함께하는 담양여행의 백미는 역시 소쇄원(사적 304호)이다.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다. 조선 중종때의 선비인 소쇄 양산보가 자신의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되자 출세의 뜻을 버리고 이 곳에 조성한 개인정원이다. 원래 10여개의 건물로 이뤄졌으나 지금은 ‘제월당(霽月堂)’‘광풍각(光風閣)’ 등 2개만 남았다. 전자는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 후자는 ‘비갠 뒤 해가 뜨면서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이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운치가 남다르다.
매화, 은행, 복숭아, 벽오동, 장미, 동백, 국화 등 20여종의 식물이 아기자기한 조화를 이루며 계절마다 다퉈 핀다. 아름다운 조경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하지만 입구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대나무가 있었기에 소쇄원의 진가는 더욱 가치를 발한다. 문의 담양군청 문화레저관광과 (061)380-3150.
/담양=글·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대나무 요리
죽림욕을 실컷 즐겼다면 이제 대나무를 이용한 먹거리를 찾아 나서자. 지금 담양은 대나무의 땅속줄기 마디에서 돋아나는 죽순이 제철이다.
죽순은 껍질까지 함께 뜨거운 물에 익혀 껍질을 벗겨 낸 뒤 죽순회, 죽순냉채, 죽순구이, 죽순정과, 죽순장아찌 등 다양한 음식재료로 활용한다. 숙취해소, 정혈작용, 불면증치료, 이뇨작용 및 변비예방에 효과가 있는 웰빙음식이다.
대통밥은 대나무의 속을 비우고 여기에 쌀, 조, 수수, 대추, 밤, 잣 등 갖은 재료를 넣고 쪄서 내는 음식. 대나무의 청정 진액을 밥이 모두 흡수하기 때문에 영양식으로 인기만점이다. 한상근대통밥(061- 383-9779), 담양대통밥집(383-3446), 죽림원(383-1292), 유진정(381-8500) 등에서 죽순과 대통밥을 맛볼 수 있다.
대나무를 이용한 술도 한번쯤 맛보아야 할 품목. 쉰 밥을 대나무밭에 뿌리고 대잎을 덮었더니 향긋한 술 냄새가 난 데서 착안, 개발한 죽엽청주, 대나무의 미세한 나무조직속으로 술이 스며들어 숙성된다는 대통주 등이 있다.
또 대나무이슬을 먹고 자란 차잎으로 만든 죽로차, 대나무잎으로 끓인 대잎차도 이 지방의 특산물로 손꼽힌다.
담양에 왔다면 대나무를 이용한 다양한 죽제품 하나 정도는 구입해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전에는 바구니나 그릇 등을 만드는 데 대나무를 주로 이용했지만 지금은 액자, 발, 테이블 매트, 타월걸이, 받침 찻상 등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담양죽물박물관에 가면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에 죽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061)381-4111.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