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에도 서열이 존재하는 시대. 제 아무리 고급브랜드라도 너 나 할 것없이 들고다니는 대중적인 상품으로는 불황기 소비자의 굳게 닫힌 지갑을 열기엔 역부족이다. 명품의 소비심리라는 것이 계층적 차별화 욕구를 바탕으로 하는 이상 '나는 다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상품이어야 살아남는다. 오직 당신만을 위해(Only For You) 태어났다고 속삭이는 상품들이 전성기를 구가하는 이유다.
지난달 27일 서울 압구정동에 위치한 (주)태평양의 커스텀 블렌드(Custom Blend) 메이크업숍 디아모레 갤러리 2층. 유명 메이크업아티스트 박태윤씨가 특별초청된 VIP를 상대로 파우더를 맞춰주고 있었다. 첫번째 단계는 나이와 화장습관, 피부상태와 피부색, 원하는 화장형태까지를 최신 피부측정기계와 진단차트를 통해 꼼꼼히 체크하는 것. 노란빛이 강하고 처짐 현상이 뚜렷한 피부에 40줄이면서 돌배기 아기를 둬 피부관리에 애를 먹는 직장여성인 VIP를 위해 박씨는 이런 처방을 내렸다.
"노란빛을 줄이고 화사한 피부를 표현하기위해 레드계열 파우더 20cc와 투명 베이스파우더 10cc, 젊고 탄력있는 느낌을 주되 너무 튀지않는 금빛 펄 10cc, 그린티 보다 성숙한 느낌의 장미향 파우더 5cc, 여기에 피부탄력과 잔주름 예방에 효과적인 기능성 추출물 조금, 모든 파우더는 실키타입 대신 건조한 피부용 모이스처타입으로."
처방전에 쓰인 파우더는 상담실 옆에 있는 조제실에서 즉석 제조돼 샘플 형태로 VIP에게 전해졌다. 정식제품은 식약청 인가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약 1주일후 집으로 배달된다.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파우더가 탄생한 것이다.
태평양이 명품 소비층을 겨냥해 내놓은 커스텀 블렌드 메이크업은 맞춤제작되는 국내 최초의 색조화장품이면서 박태윤씨를 비롯 고원혜 김선진 손대식 이희 등 당대 톱 메이크업아티스트들이 맞춤제작 카운셀러로 참가해 눈길을 끈다. 불과 20g짜리 파우더가 10만원, 3.5g짜리 립스틱은 5만원, 4가지 색상 아이섀도는 12만원에 이르는 초고가품. 그러나 '오직 당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단 하나의 상품'이라는 슬로건이 주효, 25일 정식오픈을 앞두고 벌인 프리마케팅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태평양 소비자미용연구소 김종일 소장은 "고가품 시장일수록 품질은 물론 감성의 차별화에 대한 욕구가 높다"며 "앞으로 저스트 포 유, 온리 포 유가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객의 입맛에 딱 맞추는 맞춤전략은 달리기 붐을 탄 러닝화나 트렌드에 민감한 꽃 주문배달 업계에서도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나이키는 올해 나이키 러닝 솔루션이라는 가이드북을 제작하고 매장에 컨설턴트를 배치, 고객 맞춤형 러닝화 판매기법으로 화제를 일으켰다. 러닝화는 달리는 사람의 체중과 키뿐만 아니라 발의 모양, 관절의 상태, 달리는 횟수와 습관, 달리는 장소의 노면 종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골라야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의 오로지 '가벼운 것이 좋다'고 맹신, 여러가지 사고를 당하는 것에 착안했다. 러닝 솔루션 컨설턴트들은 러너의 달리기 습관을 일일이 체크하면서 초보자일수록, 뛰는 횟수가 적을수록 신발의 중량은 무거워져도 쿠션감을 살릴 것을 권하고 매장에서 브래낙이라는 특수 자를 사용해 발의 모양에 맞는 핏(fit)을 골라주는 등의 맞춤형 서비스로 호평받고있다.
명품 플라워 브랜드 플레르 드 루이까또즈에서는 특별맞춤주문 꽃을 내놓고 있다. 전화나 방문 예약시 꽃을 받을 사람의 직업과 나이, 키, 이미지 등 프로필과 꽃을 보내는 이유를 체크해서 거기에 맞춰 꽃을 디자인해준다. 특히 받을 사람이 연예인인가 교사인가 등의 직업정보는 맞춤꽃의 전체적 이미지를 정하는 결정적 단서가 된다.
이 업체 이명혜 디자인실장은 "요즘은 기성품을 그대로 보내거나 받는 사람의 수준이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보내는 꽃은 오히려 결례로 여겨지는 추세"라면서 "맞춤제작은 상대방에게 오직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심어주기 때문에 꽃문화가 발달할수록 더 인기를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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