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 복판의 박물관에서 합격과 승진을 기원한다고? 철학관이나 점집이 아니라 분명 박물관이다. 애인 없는 사람들은 연인 만드는 꿈을 꿔봐도 좋을 성 싶다. 단층의 한옥집들이 오밀조밀 들어선 서울 가회동. 헌법재판소를 지나 전통병과교육원에서 골목길로 조금 올라가자 여느 가정집과 다를 바 없는 한옥집이 나왔다. 바로 가회박물관이다. 언뜻 보면 무슨 박물관일까 싶지만, 이곳엔 조선시대 우리 민초들의 희망과 설움, 그리고 그들의 해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 바로 조선시대 민화와 부적을 모은 곳이다.
2002년 문을 연 가회박물관은 강원 영월군의 조선민화박물관과 더불어 국내 두군데 뿐인 민화 전문박물관. 특히 이 곳엔 박물관 전시 유물로 전혀 취급되지 않던 ‘부적’을 함께 전시해 눈길을 끈다. 민화와 부적은 엄연히 다른 분야지만, 부적이 민간에서 전승된 호랑이 그림 등의 형태로 그려지기도 하고, 민화가 귀신 쫓는 벽사의 의미도 지녀 둘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서민들의 삶과 정서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통로다.
호랑이 그림을 통해 귀신을 쫓으면서 가정의 화목을 기원하는 가정화합부, 남녀의 애정을 염원하는 애정부, 무서운 질병이나 화를 막기 위한 재앙퇴치부 등 갖가지 종류의 부적이 전시돼 있고, 부적 목판에서 부적을 직접 찍어 갈 수 있다.
가회박물관은 부적 뿐만 아니라 한옥식 건물로도 유일한 박물관. 한옥 건물 자체를 박물관으로 활용해, 일반 한옥방이 곧바로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각종 민화로 둘러싸인 온돌방에 앉아 차 한잔 나누면서 유물을 관람하는 안방 박물관인 셈. 옛스러우면서 포근한 분위기에서 즐기는 유물 관람이다.
이렇게 민화와 부적을 수집한 관장은 민화에 거의 일생을 바친 민학회 회장인 윤열수(57) 문화재전문위원. 대학졸업 후 도깨비, 무속, 민화 등 민속유물을 새롭게 조명한 주역이었던 고 조자룡씨가 세운 에밀레박물관에 근무하면서 민화와 인연을 맺었다.
그 이후 30여년동안 민화를 모으고, 연구하면서 민화와 한 길을 걸어온 인생이었다. ‘한국의 무신도’ ‘민화이야기’ 등을 저술하며 민화에 대한 이해도 넓혀왔다. “민화나 부적은 민중의 마음을 여실하게 읽을 수 있는 분야예요. 가식없이 그려진 민화엔 순수하면서도 장난을 좋아하는 민중의 심성이 고스란히 담겨있고, 부적에는 그들의 원초적 욕망과 꿈이 배어있죠.”
하지만 민화가 예술품 취급도 못 받던 시절이 있었다. 윤 관장은 특히 새마을 운동 때 오래된 물건을 모조리 내다 버리면서 민화도 부지기수로 쓰레기통으로 처박혔다며 안타까워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민화가 낮게 평가 됐던 게 사실. “민화를 더 귀중하게 여겼던 이들은 오히려 외국인들이었어요. 우리 민족의 특징이 민화에 들어있다고 봤던 거죠. 그 바람에 안타깝게도 상당수의 민화가 외국으로 나가버리긴 했지만….”
한평생 민화에 바친 연구자가 세운 박물관이지만, 가회박물관은 아직 윤 관장의 성에 차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40여 평의 대지위에 자리잡은 ‘ㄱ’자형 한옥 전시실은 15평 정도로 규모면에서는 단초로운 편. 민화 250여점, 부적 750여점 등 1,500여점에 이르는 소장 유물을 다 보여줄 수 없어 기획전 형태로 전시하는데 요즘은 ‘문자도’전이 열리고 있다.
문자도는 효(孝), 충(忠) 등의 글자를 그림화한 민화의 한 형태로, 유교의 도덕 강령을 재미난 그림으로 표현한 재치가 돋보인다. 윤 관장은 “아직은 소박하지만, 가회박물관을 더욱 발전시켜 민화의 국제적 명소로 자리잡게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가는길=지하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로 나와 200m가량 직진, 전통병과교육원 옆 골목으로 우회전한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한옥집의 가회박물관이 나온다.
▲시간=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
▲관람료는 학생 2000원, 일반 3,000원. (02)741-0466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