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 개원(30일)을 앞두고 요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국회의원들의 옷차림입니다. 16대 보궐선거로 국회의원이 된 유시민 의원이 처음 면바지에 검정 재킷을 걸치고 국회인사를 했다가 “무슨 옷차림이 그러냐”, “예의를 지켜라”며 당시 동료 의원들에게 타박을 받은 일이 있지요. 유시민 의원은 일터에 편한 옷차림으로 간 것이 잘못이냐고 항변했지만 결국 다음날 정장차림으로 다시 의원신고를 하는 곤욕을 치렀습니다.그런데 이번 17대 국회는 더 특이한 옷차림을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벌써 민노당 의원중 상당수가 내 방식대로 옷차림을 고수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섰으니까요. 노동운동가 출신인 단병호 의원은 트레이드마크인 작업복 차림으로, 농민운동가 출신인 강기갑 의원은 길게 늘인 흰수염을 안 깎는 것은 물론 한복 도포차림으로 국회에 나오겠다고 말해서 주목을 끌고있습니다.
17대 총선이 끝난 시점부터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된 국회의원 옷차림 문제를 새삼스럽게 다시 꺼내는 이유는 패션담당 기자로서 느끼는 격세지감 때문입니다. 90년대 중반만해도 정치인의 옷차림을 거론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습니다. 패션이 사치와 허영심에 기반한 여인네들의 관심사로 치부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옷차림이 처음 주목받은 것은 아마도 국민의 정부 출범직전 김대중 당시 대선후보자의 이미지메이킹전략이 여러 매체의 주목을 받으면서 였습니다. 당시 이미 70대를 넘은 김후보는 미국의 레이건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세련된 정창차림과 염색한 깔끔한 머리로 젊고 활력있는 이미지를 강조했지요.
이때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을 모방한 이인제 의원의 헤어스타일, 박근혜 대표의 청재킷차림,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의 키높이구두 등이 심심찮게 화제에 올랐습니다. 그 모든 정치인의 옷에 관한 화제는 언제나 같은 분석을 달고있었지요. ‘이미지 정치 시대에는 옷차림도 전략이다.’
최근 국회의원들의 지나친 특권과 특권의식에 대해 여기저기서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국회의원들의 한결같은 정장차림도 그런 특권적 지위에 대한 공동의 묵계가 아닐까요. 옷차림이 전략인 시대에 자신이 대변하는 사람들, 이익집단들을 겨냥한 전략적 옷입기가 정장이 아니라고 해서 비난받을 이유는 없는 거니까요.
네덜란드 같은 나라는 국회의원이 청바지에 자전거를 타고 등원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기회에 좀 더 멋있는 국회의원들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넥타이 대신 깔끔한 목폴라 니트에 재킷을 걸치고 서류가방을 팔에 낀채 날렵하게 국회의사당 계단을 뛰어올라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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