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속에 담아 둔 사랑이 있습니다. 제 우산 속으로 뛰어들어온 그 소녀는….' 1970, 80년대에 첫 사랑의 가슴앓이를 해본 사람이라면, 라디오 DJ의 입을 빌려 사랑 고백을 하는 '말죽거리 잔혹사'의 현수(권상우)와 같은 추억 하나쯤 간직하고 있을 터이다. 가슴 졸이며 귀 기울인 라디오에서 자신의 사연이 꿈결처럼 흘러나올 때의 그 감격이란!따뜻한 이야기와 음악으로 청취자들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때로는 풋풋한 사랑의 전령사 노릇을 해온 KBS 2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106.1MHz·밤 12∼2시)가 9일 방송 40주년을 맞는다. 라디오와 TV를 통틀어 최장수 프로그램인 '밤 그대'는 1964년 5월 9일 라디오서울(RSB)을 통해 첫 전파를 탄 뒤 TBC(동양방송)를 거쳐 80년 방송통폐합 이후 KBS에 새 둥지를 트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지만 제목과, 영화음악 '시바의 여왕'에서 따온 시그널 뮤직은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채 5년 늦게 방송을 시작한 MBC '별이 빛나는 밤에'와 라디오 심야 프로그램의 양대 산맥을 이루며 청취자들의 잠 못 드는 밤을 함께 해왔다.
그 동안 '밤 그대'를 지켜온 DJ는 양희은 서유석 황인용 박중훈 전영록 변진섭 등 30여 명으로 모두 당대를 주름잡은 스타들이었다. 74년부터 7년간 진행한 최장수 DJ 황인용씨는 "방송이 나가는 동안 청취자 전화가 폭주해 시내 전화가 마비될 지경이었다"고 회고했다. 방송 초반 진행이 서툴러 애를 먹다가 생머리 여성 팬이 보낸 사진을 마이크에 붙여놓고 데이트하듯 진행하자 칭찬이 쏟아졌다고 한다. '여성시대'를 공동 진행하고 있는 양희은의 '밤 그대'를 듣고 자라 80년대 초 DJ를 맡은 송승환씨는 "당시 유행한 전영록의 '종이학' 덕에 여학생 팬들로부터 종이학을 매일 사과상자 4, 5개 분량씩 받았다"면서 "반에서 1등부터 30등까지는 '밤 그대' 듣고, 31등부터 60등까진 '별밤' 듣는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40년 세월은 라디오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청취자들과의 대화 창구는 엽서와 전화에서, 80년대 팩스를 거쳐 인터넷 게시판과 이메일로 바뀌었다. 10대들의 '가장 친한 친구' 자리도 인터넷과 각종 영상매체에 뺏긴 지 오래다. 하지만 현재 진행하는 신애라는 "수다보다 음악을 중심으로 편안하게 꾸며 저와 같은 30대는 물론, 조숙한 10대와 여유있는 20대, 젊게 사는 40, 50대까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밤 그대' 제작진은 40주년 기념 행사를 화려하지는 않지만 알차게 준비했다. 8일 오후 6시에는 KBS홀에서 엄정화 박효신 왁스 김범수 이정선밴드 자전거탄풍경 테이 등이 함께 하는 특집 공개방송(15일 방송)이 열린다. 곧 활동을 재개하는 가수 변진섭이 신애라와 공동 진행한다. 또 음악평론가, 라디오 음악 프로 PD와 DJ가 청취자와 함께 뽑은 추억의 노래 36곡을 담은 기념 음반도 발매한다. 1,000장 한정으로,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해 수익금을 어려운 이웃 돕기에 쓸 예정이다. /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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