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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이라크 파병 연기론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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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이라크 파병 연기론 왜?

입력
2004.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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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 자치지역인 아르빌주를 자이툰부대의 파병지로 잠정 결정해 놓고도 한 달 가까이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해 파병일정이 연쇄적으로 늦어지고 있다. 숙영지 조성과 장비수송 등 종합적인 여건을 감안할 때 이르면 5월 선발대 파병, 6월 중 본대 파병이라는 국방부의 파병 로드맵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파병지 선정이 지연되는 데는 이라크 현지의 협조 미흡과 "서두르지 않겠다"는 한국의 전략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우선 표면적인 파병지연 이유는 개인 소유인 아르빌공항 사용에 대한 현지 주정부의 확약과 아르빌주 쿠르드민주당(KDP) 지도자 마수드 바르자니의 공식 환영 입장 표명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바르자니가 이미 개인적인 환영 의사를 밝혔지만 공식 확답을 받은 뒤 파병지를 최종 결정하겠다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다.

또 현지 공항이 한국군의 군수보급 통로이면서 주둔지로 활용될 예정인 전략적 요충지여서 주정부의 공식 사용승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군 고위 관계자는 "공식 환영의사 등을 표시하기 위해서는 아르빌 주의회의 동의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이 의외로 길어지고 있다"며 "미군 당국이 나서 협조를 요청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주 내에 통보가 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현재 아르빌 주정부는 한국군 주둔 시 자치권 확대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내부 판단을 하고 있는데다 공항운영권을 외국 기업에 넘길 계획도 갖고있어 통보를 미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병지연 이유와 관련, 우리 정부가 공식 환영의사 표명을 사실상 파병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데 대해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입장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지적과 함께 더 나아가 정부가 의도적인 파병 지연전술을 펴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까지 제기되고 있다. 특히 미군의 이라크인 포로 학대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이 악화하면서 국내의 파병 반대 움직임이 다시 힘을 얻고 있는 상황까지 감안해 정부가 파병을 서두르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부적으로 정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라크 주권이양 시점인 6월30일을 넘기게 되면 형식적으로 동맹국인 미군을 돕는다는 명분이 일부 퇴색할 수밖에 없는데도 정부가 파병을 서두르지 않으면서 이 같은 분석이 더욱 힘을 얻어가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우리 정부가 독촉할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니냐"고 밝혀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파병지가 바로 확정된다 해도 선발대는 6월 중순, 본대는 7월에나 출국이 가능하다. 부산항을 출발해 쿠웨이트까지 파병장비를 수송하는 데 25일 정도 소요되고, 수송을 맡을 선박회사와의 계약에도 3주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방부와 합참은 파병시점과 관련, "이미 파병 부대원 선발과 훈련이 마무리돼 있기 때문에 파병지만 확정되면 일사천리로 파병이 이뤄질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군 당국은 또 현재 이라크 남부 나시리야에 주둔 중인 서희·제마부대도 아르빌주로 최단시간 내에 전환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김정호기자 azure@hk.co.kr

■정치권 반응

정부에서 이라크 추가파병 연기 불가피론이 나오자 정치권에서도 파병 신중론이 확산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열린우리당 일각에서는 아예 "파병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고, 한나라당은 "파병 원칙은 유지돼야 한다"는 기조 속에 "철저한 사전대책과 준비가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당의 공식 입장은 "현지 상황을 신중하게 지켜보되 파병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병시기나 규모 등을 재검토 해야 한다는 의견이 상당하다. 김근태 원내대표는 6일 "지금이 파병동의의 전제 조건이었던 평화재건을 할 수 있는 상황인지 정부가 면밀히 조사해 보고해야 할 것"이라며 "이라크에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이라크 정부와 협의해서 파견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천정배 의원은 "이라크 상황이 달라진 것과 미국과의 약속 등을 모두 고려해 파병 시기와 규모 등을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장영달 의원도 "현지 치안상황 등에 따라 시기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파병 철회론도 제기됐다. 송영길 의원은 "포로 학대 사건 등에서 보듯이 미국과 영국군이 이라크에 주둔할 최소한의 도덕적 명분도 없어진 게 현실"이라며 "평화재건 부대의 성격을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며 파병철회를 포함한 전면 재검토를 주장했다. 이인영 당선자도 "상황이 달라졌는데 이미 결정된 것이라 파병을 해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고, 김영춘 의원은 "유엔의 깃발 아래 가는 방법 등 대안을 검토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조금 다르다. 박진 의원은 "파병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게 당의 입장"이라며 "다만 현지 상황이 위험해진 만큼 장병들의 안전을 위한 철저한 사전대책과 파병지역, 기간, 조건 등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진하 당선자는 "정부와 여당이 파병에 필요한 조치를 조속히 마련해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은 "우리 군인들이 명분 없는 전쟁에 총알받이로 나설 이유가 점점 더 희미해 지고 있다"(심상정 당선자)며 파병 철회 입장을 재확인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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