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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실용이든 개혁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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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실용이든 개혁이든

입력
2004.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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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돌발적 변수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곧 직무에 복귀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 노무현 대통령과 5·16 군사반란 이후 자유주의 정치세력으로서는 처음 국회를 지배하게 된 열린우리당이 어떤 정책을 펼지는 아직 또렷하지 않다. 노 대통령은 이념 경쟁의 시대가 끝났다는 화두만 던져놓았고, 열린우리당은 다소 소란스러웠던 의원 당선자 워크숍 끝에 당의 갈 길을 '실용노선'으로 정리한 상태다. 그러나 탈이념이나 실용노선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 관념적 언어는 일정한 방향을 지닌 구체의 살로 채워져야 현실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이번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내걸었던 공약의 상당수가 재정적 뒷받침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섣불리 마련된 것이라는 기획예산처의 평가가 있었다. 그것은 열린우리당이 이 공적 약속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부와의 갈등을 어느 정도 무릅써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총선 공약과는 상관없이, 또 당과 정부의 노선이 실용이든 개혁이든 실용적 개혁이든,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가 자유주의 정치세력으로서 시급히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 둘 있다. 이 일들에는 다행스럽게도 예산이 따로 필요하지 않아, 당과 정부가 갈등을 빚을 염려도 없다.

그 첫째는 반인권 악법들을 없애는 것이다. 양심의 자유를 바짝 옥죄고 있는 국가보안법, 이 법에 따라 옥살이를 하고 나온 뒤에도 사생활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할 수 있도록 한 보안관찰법, 일부 범죄자에 대해 실질적으로 이중처벌의 길을 열어놓은 사회보호법 따위가 그 예다. 이 법들은 자유주의 정치 질서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파시즘의 유물이다. 이제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된 만큼, 개정이니 대체입법이니 하는 말도 들어갔으면 한다. 화장하거나 교대했다고 해서 악법이 악법 아닌 것은 아니다.

더불어, 지난 해 말 일부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동조 속에 처리된 새 집시법도 크게 손질해야 한다. 이 법에 따르면, 그저께 오피니언 면에서 서강대 손호철 교수도 지적했듯, 결과적으로 열린우리당을 구해낸 촛불집회도 불법이다. 그 전부터 논란이 돼온 야간집회 금지 규정도 그렇지만, 새 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로 '교통 소통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우려가 있을 경우' 주요 도로에서의 행진을 금지할 수 있다면, 일정한 규모 이상의 집회나 시위를 대한민국에서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시급하기로 말하면 더한 여권의 두 번째 과제는, 이라크에 군인들을 더 보내지 않는 것은 물론 이미 가 있는 군인들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 유일 초강대국과의 관계를 껄끄럽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와 여당으로서 내리기가 한결 어려운 결정일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일일수록 그 근본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이라크는 지금 전후 상태가 아니라 전쟁 상태다. 그리고 이 전쟁은 더러운 전쟁이다. 최근 밝혀진 미군의 잔혹한 포로 학대를 두고 하는 말만은 아니다. 쿠르드족 학살을 비롯해 후세인이라는 망나니가 저지른 가공할 범죄 대부분은 미국의 이른바 신보수주의자들의 지원과 양해 아래 이뤄졌다.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가 지적했듯, 후세인과 미국 정부는 사이 좋게 더러운 거래를 하다가 틀어진 사업 파트너고, 이들의 싸움은 집안 싸움이다. 게다가 지금 미군의 총부리가 향하고 있는 곳은 옛 동업자 악한이 아니라, 그 악한에게 피를 빨리고 있다고 미국 정부가 선전해온 이라크 민중이다.

정부는 이 더러운 싸움에, 미국과의 우의 때문에, 우리 젊은이들의 피를 보태겠다는 것이다. '실용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정권 안보' 측면에서도 어리석은 짓이다. 지금은 박정희 시절이 아니다. 이라크에서의 한국군 전사자 명단이 속속 들어온 뒤에도 정권이 온전할까? 그 때 미국이 이 정부를 구원하기 위해 나서 줄까?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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